“하나만 물어봅시다. 칼이 강하오, 꽃이 강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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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물어봅시다. 칼이 강하오, 꽃이 강하오?”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7.01.1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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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광순의 ‘해월의 딸, 용담할매(청산편)’

여성동학다큐소설③

 

고은광순 씨.

비밀을 지키기 위해 친인척으로 조직을 늘려 가서 ‘처남포덕’이라고 했던 동학은 ‘마당포덕’에‘우물청수’라는 말이 돌 만큼 빠른 속도로 교도들이 늘어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 방에 들어올 새도 없이 마당에서 우물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그 우물을 동학 의례 때에 떠 놓는 정화수인 청수 삼아 입도식을 했기 때문이다.

동학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니 한 동안 뜸하던 유생, 관원들의 토색질도 덩달아 날개를 달았다. 충청감사로 부임한 조병식이 다시 동학도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영동 옥천 청산의 수령들 뿐아니라 전라도 탐관오리들도 동학도들의 재산을 빼앗고 그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조선을 넘보는 왜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 일본은 신식병기를 갖추었다고 했다. 스승 최제우가 ‘개 같은 일본 놈’이라며 누누이 일본을 경계하라 하시지 않았던가. 동학도들은 탐관오리를 칠 것과 자유로운 동학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두 해에 걸쳐 공주, 삼례, 광화문, 보은 취회를 열었지만 조정은 ‘돌아가면 처리해 주겠다’며 입에 발린 소리만을 할 뿐 진심으로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해월은 청산으로 가족의 거처를 옮겼다.

1893년 보은취회를 지켜본 청산현감 조만희는 그들의 모임이 민회(民會)이며 비적이 아니라 민당(民黨)이라고 보고한 선무사 어윤중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했다. 이십여 일을 머물렀지만 동학도들이 떠날 때 그 자리에 검불하나 남아있지 않았더라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보은 민회에서 동학도들의 행동거지를 경험한 떡장수, 엿장수, 소금장수들은 모두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들을 칭찬했다. 보은, 옥천, 영동 중에서도 특히 해월이 자리를 잡은 청산은 현감 조만희 덕에 마음 놓고 동학하기 좋은 곳이 되었다.

그 무렵 황해도를 출발한 15명의 대표 도인들이 해월을 만나러 왔다. 일행 15명 중에 나이가 가장 적은 이는 19세의 김구(당시 이름 김창수). 지난 가을 황해도를 떠난 일행 중 하나가 총각 접주 김구를 찔벅거렸다. 젊은이가 수천 명을 포덕했다니 신통하기도 했고 시험을 해보고도 싶었기 때문이다.

“자네는 어떻게 동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책에서 관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같지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같지 못하다는 글을 보았지요. 마음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찾다가 갯골 오접주의 인품을 보고 동학이 바로 내가 찾던 거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하하. 세상 돌아가는 꼴이 하도 더러워 술 마치고 집사람이나 아이들에게 패악질을 하곤 했다네. 그러다가 해월께서 부부가 사이좋은 것이 으뜸이라 말씀하신 걸 필사본으로 보게 되었지. ‘부인은 한 집안의 주인이니 혹 성을 내더라도 남편이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한 번 절하고 두 번 절하고 온순한 말로 성내지 않으면 반드시 화할 것이라’고 하셨더군."

“아니 사내보고 여자에게 절을 하라니요? 한 번도 아니도 두 번 세 번? 어이구...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인데요?”

“그 글을 읽는 순간 갑자기 엉엉 울음보가 터지지 뭔가. 아내는 평소에 나를 무서운 짐승 보듯 했었거든. 그게 나를 더 화나게 만들었지. 집에 가서 아내에게 큰 절을 몇 번 했다네. 내가 그동안 미안했다고 했더니 아내의 눈빛이 대번 달라지는 거야. 이제 집안에서 연일 웃음꽃이 피어나니 천국이 따로 없데그려.”

대도소 근처는 오가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김구 일행은 길가 평상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김구는 기별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유달리 바쁘게 도소를 드나드는 처녀를 보았다. 곱게 빗어 뒤로 길게 땋아 댕기를 묶은 머리는 한 올 흐트러짐이 없었고 앙다문 빨간 입술이 고왔다. 김구는 슬그머니 일행을 떠나 처녀에게 다가가 물 한 그릇을 청했다. 물을 마신 뒤 그릇을 내밀며 김구는 슬쩍 처자에게 물었다. 눈이며 입매가 다부져 보였다.

“하나만 물어봅시다. 칼이 강하오, 꽃이 강하오?”
처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소를띠고 답했다.
“칼은 무 써는데 강하고요, 꽃은 열매 맺는데 강하지요.”

처녀는 물그릇을 받아들고 냉큼 부엌으로 사라졌다. 김구는 그 자리에 멍하게 서 있었다. 따스한 봄바람이 귓불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 처녀에게 그토록 쉬운 답을 나는 왜 몇 달 동안이나 가슴에 담고 헤매고 있었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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