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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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가
  • 안효숙 수필가
  • 승인 2017.09.2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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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숙 수필가

명절 대목을 앞둔 옥천 장은 우리 장꾼들의 기대와는 달리 한산했다.

하루 팔고 갈 물건을 앞에 놓은 장꾼들은 몸살이 나도록 손님을 소리쳐 불러 보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어떤 장꾼은 장사가 안돼서 포기했는지 아니면 새벽녘에 나와 몸이 고단해 아침술을 마셨는지 신문지를 얼굴에 덮고 잠을 자는 이도 더러더러 보였다.

하지만 햇살이 따사로워 한껏 나른한 졸음을 쏟아낸다 해도 누구 하나 게으르다 흉볼 것 없는 넉넉한 가을날이다.

고향을 찾아올 자식을 위해 좋은 음식을 먹이려고 빠른 걸음으로 장꾼들 사이를 돌며 이것저것 먹거리를 찾아내며 가득 찬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이의 얼굴엔 기쁨의 빛이 서렸다.

예전에 명절이면 장터에 나타나 시끌벅적 사람을 몰고 다니던 약장사나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 뻥이오, 하는 소리에 어린아이는 놀라 울고, 길 가던 사람들의 귀를 틀어막게 하던 튀밥 장사도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단지 이맘때면 드문드문 솔잎이 붙어있는 기계가 만들어낸 송편과 제사상의 수고로움을 한결 덜어줄 동그랑땡이나 동태전, 해물전 앞에 부인들이 줄을 서 있을 뿐이다.

한낮의 부지런함이 걷어질 무렵, 눈빛을 볼 수 없는 새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마이크를 목에건 아저씨가 장터의 빈자리를 찾아 전을 편다. 오가는 사람을 불러 세우는 구수한 입담을 갖은 아저씨다.

적당한 음담패설을 섞어 귀가 솔깃하게 만들어 시장에 오가는 사람들을 불러 세운다.

어느 순간 그들 틈에 장사는 뒷전인 채 나도 섞이게 되었다.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 고향.....”

노래도 구성지게 잘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속으로 더 크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만나면 즐거웠던 외나무다리 그리운 내 사랑아... 추억은 어디...”

최무룡이 울고 갈 노랫소리에 열무단을 이고 가던 아주머니도, 지팡이에 매달려 걷던 할머니도 구경꾼 사이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아저씨를 마주 보고는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는다.

양은냄비 몇 개를 앞에 놓고 아저씨는 철수세미로 냄비에 광을 내기 시작한다.

몇 번의 손놀림으로 냄비는 일순간 창공을 가르는 비행기 날개처럼 반짝반짝 거렸다.

바로 코앞에 앉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라보던 할머니는 깨끗해진 냄비를 들고는 “이걸로 색경해도 되겄구먼, 얼마나 깨끗한지 얼굴이 다 보이네. 참 용하네. 금세 새것이 되어버린게....”하고는 몸빼 바지에 붙들어 맨 주머니를 열어 천 원짜리 하나를 꺼내 철수세미를 산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하나씩 달라 손을 내미니 양동이는 금세 천 원짜리로 가득 찼다.

신이 난 아저씨의 목소리는 힘이 들어가 고요했던 장터는 흥겨워졌다.

뒤에 서서 구경하는 사람에게 다가간 아저씨는 마다하는 자전거 주인의 바큇살에 광약을 묻혀 닦는데 금세 새 자전거처럼 반짝거리니 자전거 주인도 광약을 사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오래전의 영사기를 돌려보듯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따라간 시장에서 만난 풍경이 떠올랐다.

추석이면 어머니는 막내인 내 손을 잡고 육거리 시장엘 갔다.

잘 익은 사과를 사고 몇 번의 흥정을 거쳐 생선을 사고 다음은 추석빔으로 내 옷을 사주셨다.

언제나 한 삼 년은 더 입어야 한다며 소매는 내 작은 손을 지나 끝도 없이 내려가 몇 번이나 접어 입어야 하는 큰 옷을 사주셨다.

목걸이가 매달린 빨간 스웨터가 원피스처럼 되어버렸으나 새 옷을 입은 내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엄마 손을 잡아끌며 기웃거렸다.

곤로불에 그슬려 새카맣게 된 냄비를 닦는 광약을 본 것도 오십 년 전이다.

그때는 냄비에 광을 내는 것이 마술하는 사람 같았고 먼 세상 사람같이 신기하기만 했다.

언제나 할 일이 많은 어머니는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가야 한다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내 머릿속은 잘 닦인 냄비처럼 반짝반짝하여 늘 궁금한 일이 많았지만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생각이 떠오르니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생업에 열심이었다.

점점 사람들이 발길이 사라지는 장터에서 한나절 철수세미와 광약으로 광을 내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던 수세미 아저씨는 선글라스를 벗고 땀을 닦았다.

물 한 잔 건네려 다가간 아저씨는 등을 돌려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어깨너머로 보이는 것은 깐드레불로 몇 개의 양은냄비에 끄름을 내고 있었다.

순간 보면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인기척을 느낀 아저씨는 등을 돌려 나를 보더니 못마땅한 듯 헛기침을 하고는 선글라스를 다시 썼다.

그리고는 아랑곳없이 다시 소리쳐 사람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그곳에 계속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내 자리로 돌아온 나는 유년의 기억을 더듬었다.

광약으로 닦으면 새것처럼 만들어지며 빛을 냈는데 나도 아저씨처럼 침을 묻혀가며 닦아도 닦아도 끄름의 더께가 지지 않고 탁해지는 냄비를 들고 “왜 아저씨가 닦은 그릇처럼 반짝반짝 해지지 않지?”하니 곁에 있던 아버지는 다 속임수라고 했다.

그런 속임수를 알고 실망하면서도 나는 그들처럼 장꾼이 되었다.

장꾼이 되어버린 게 숙명이라고 말하기엔 호들갑스럽고 요란하다 하겠지만 한 번도 후회하거나 절망하지 않았고 묵묵히 어느 자리에서든 살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장꾼이 되어있었다.

지금은 애처로운 어머니 보다 훨씬 앞선 나이가 되었고 살아 남기 위해 행해지는 보이지 않는 거짓을 눈감아버리기도 한다.

이 나이가 되니 그리운 것이 많아졌다.

특히 명절을 앞두고는 괜스레 바라보이는 것마다 다정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모든 사물이 애틋이 느껴진다.

명절날 갈 곳이 없어 쓸쓸히 걸어가는 사람의 그림자를 뒤따라 밟으며 외롭지 않게 길동무가 되고 싶기도 하고 홀로 산소를 찾아가 먼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당신도 나처럼 가슴 아프냐며 술 한 잔 따라주고 싶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금은 보름달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후회로 밀려오고 용서받기를 갈망한다.

그 달빛 아래서 그리운 사람을 추모하며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내 말이 들리냐고 간절하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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