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먹는 국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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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먹는 국수 맛
  • 동탄 이흥주 문정문학회 사무국장
  • 승인 2018.08.0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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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이흥주 문정문학회 사무국장

한여름엔 입맛을 잃기 쉽다. 날이 더워 몸의 상태도 별로 안 좋고 활력도 떨어지다 보면 식욕을 잃는 경우가 많다. 식성이 안 좋은 사람들은 더위에 시달리다 그 시원찮은 식욕마저도 잃기 십상이다.

식성은 조금씩 변화가 온다. 마른국수를 사다가 삶아먹는 걸 전에는 별로 안 좋아했는데 근래엔 여름이 오면 이 국수를 찬물에 건져 먹는 게 참 좋다. 이 마른국수도 지금은 너무 잘 만들어져 나온다. 탄력 있고 매끈한 식감이 아주 좋다. 여기에 애호박을 채 썰어 들기름에 볶아서 얹어 먹으면 정말 별미다. 반찬도 김치 한 가지면 된다.

지금은 남자들도 요리를 하고 설거지도 하면서 주방 일을 거들지만 난 주방에서 할 줄 아는 게 라면 끓이는 것밖엔 없다. 아마 내가 혼자 살면 이 풍족한 세상에도 못 먹어서 탈이 날 것이다. 그런데 요 가는 국수 삶아서 건지는 것만큼은 할 줄 안다.   

우선 물이 팔팔 끓을 때 가는 소면을 넣는다. 이때 면이 서로 붙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다 삶아졌으면 찬물에 속히 헹군다. 찬물에 급히 헹궈야 면발이 탄력이 있다. 나이를 먹다보니 너무 차도 안 좋다. 차지 않게 헹궈서 호박 볶아놓은 것을 얹어 먹으면 세상에 이런 맛은 없지 싶다. 그 흔해빠진 국수를 먹으며 이렇게 좋으니 행복이라는 건 뭐 느끼기 나름이고 생각하기에 달린 거 어닌가.

법정스님이 산막에서 혼자 이 국수를 자주 삶아 드셨다. 법정스님은 그때 이렇게 얘기했다. 남이 몇 생을 두고 먹을 양을 요 10년 사이에 먹었다고. 스님께서 국수가 가장 맛있을 때는 삶은 국수를 샘가에서 헹구다 그걸 손으로 그냥 집어 먹을 때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아닌 게 아니라 시장기가 있을 때 국수를 헹구다 한 움큼 입에 넣고 먹으면 매끄럽고 쫄깃한 맛이 정말 괜찮다. 난 다른 건 못해도 위에 얘기한 대로 이 국수 삶아 먹는 건 할 줄 아니 그나마 다행이다. 호박꾸미 하는 것도 아주 쉽다. 호박을 채칼로 가셔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볶으면 그만이다. 혼자 집에 있을 때 이렇게 삶아먹는 국수 맛에 이 더운 여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뭐니 뭐니 해도 국수는 집에서 해먹는 칼국수 맛이 최고다. 우리 집엔 국수 미는 안반과 홍두깨가 있다. 그러고 보니 할 줄 아는 게 또 있다. 해준 반죽을 미는 일이다. 이거야 힘으로만 하는 것이니 할 줄 안다고 자랑할 일은 못 된다. 칼국수는 반죽이 어렵다. 물을 조금씩 제겨 가며 천천히 조물조물 해야 하는데 이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그게 질면 아무리 국수가 먹고 싶던 참이라도 수제비나 해 먹어야 한다. 국수 미는 것이야 노하우가 없어도 힘으로 하는 것이니 여자들이 약한 힘으로 힘들게 미는 걸 못 봐줘서 흔히 내가 미는 것이다. 빨리 먹고 싶어 급한 마음도 작용을 한다.

집에서 해먹는 칼국수에도 애호박이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 애호박을 썰어 넣고 끓여야 제 맛이 난다. 건지면 좋지만 칼국수 맛은 역시 뜨겁게 먹어야 어울린다. 옛날에는 밀농사를 지어 동네 방앗간에서 빻아 그걸로 국수를 해먹을 때는 구수한 맛이 좋았다. 지금 밀가루로 한 칼국수는 매끄럽고 질기기는 하지만 구수한 맛은 없다. 칼국수는 매끄러우면서도 질기게 하는 게 기술이다. 국수가 힘이 없으면 제대로 된 게 아니다. 칼국수에는 생 콩가루를 빻아놓고 섞어서 해야 한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걸 많이 해먹었다. 한데 이것만 하면 내가 폭식을 해대서 건강을 위해 요즘은 별로 안 한다. 당뇨는 없지만 당뇨에 이 밀가루 과식이 안 좋다고 해서 자제를 하는 편이다. 그런데 사다가 삶아먹는 국수가 그 자리를 대신 메웠으니.

사람이 살아가는데 식도락도 아주 중요한 부분에 속한다. 옛날에야 그저 굶지나 않고 살면 다행으로 알았지만 지금이야 배만 불리는 것 가지곤 만족을 못한다. 몸에 좋은 것 따지고, 영양 따지고, 유기농이란 걸 찾아먹고, 고기도 연하고 좋은 부위만 사다먹는다. 여기저기 잘하는 식당을 찾아다니고 접해보지 않은 어떤 특별한 음식을 찾아 전국을 누빈다. 한번 소문이 나면 전국에서 벌떼처럼 인파가 몰려 반 한 끼 먹는데 종일을 소비하는 세상이다.

거리가 먼 것쯤은 크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 세상이 그만큼 풍족해져서 식문화도 바뀐 증거이니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해야 할 것이다. 세계 10위권의 풍요한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말해 무엇 하랴.
한여름, 흔하고 별것도 아닌 국수를 사다가 삶아서 김치 한 가지 놓고 먹는 것에도 행복감을 느끼니 부자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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