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드는 곳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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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드는 곳이 좋다
  • 김정자 수필가·지니카페 대표
  • 승인 2018.08.0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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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수필가·지니카페 대표

유년시절 우리 집은 초라한 모습에도 아랫목 정은 늘 따뜻했다. 가난함에 부끄러움과 배고픔의 서러움으로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 남아 있는 골목에 다닥다닥 줄지어 늘어선 판잣집 맨 끝에 집이 우리 집이다. 담장 밑 가로등에서 보따리를 이고 간 엄마를 기다리며 두꺼비 집을 만들다보면 늦은 밤 보따리를 이고 골목길을 걸어오는 엄마의 그림자가 보였다.

반가움에 엄마의 손을 잡았는데 낙엽이 엄마와 내 손등에 떨어 졌다. 엄마는 그 낙엽을 보고 “이것이 돈이라면 좋겠다”하면서 낙엽을 움켜쥐었다. 난 그때 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가리키며 “저 낙엽만큼 돈 벌어서 엄마 호강 시켜 줄게”라고 말했다. 그때 엄마의 웃음은 쌩쌩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한숨 소리로 내 귓불이 시려왔다.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햇볕조차 찾아오지 않는 구석진 방 한 칸에서 예닐곱의 식구가 피난민처럼 옹송거리고 보리밥에 배를 채울 때 엄마는 부뚜막에 앉아 잔반 닥닥 긁는 소리에 자식들의 꿈과 희망을 소원했다.

태풍이 넘실대며 쑤석거리고 지나간 자리는 슬레이트 지붕 형체만 남긴 채 간신히 하늘을 가리고 있었고 물 때 잔뜩 낀 천정은 거의 한쪽이 주저앉다 시피 했다.
심지어 어린 내 주먹보다 훨씬 큰 쥐들은 이리 저리 몰려다니며 가난을 도둑질했다.
시커멓게 때가 낀 비닐로 둘둘 감겨져 이미 구차해질 대로 구차해진 나무문은 찬바람에 얼어붙어 문을 여닫을 때마다 귀신 우는 소리를 냈었다.

골목길 한 귀퉁이를 차지한 허름한 우리 집 벽은 빈속 막술에 취하여 비틀대며 귀가하는 동네 아저씨들의 화장실이다. 또 삶이 팍팍한 어떤 이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하여 이래저래 생채기가 가실 길 없는 그런 담벼락 이었다. 그래도 그 담벼락은 가끔씩 아이들 웃음소리가 났고 우리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겨우 연탄의 온기로 따끈해진 아랫목에 묻어둔 밥그릇엔 엄마의 심장 온기가 늘 뭉클하게 만져졌다. 동생들의 고사리 같은 손은 흙손에 묻혀 한 끼를 배 불리 먹고 싶어 옹기종기 모여서 엄마 얼굴을 본다. 터진 양말을 깁던 엄마는 날마다 한숨만 푹푹 쉬고 그때 난 늘 따뜻함을 그리워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담에 크면 꼭 따뜻한 집에서 정을 느낄 수 있게 살리라. 햇볕 잘 들어오는 집에 커다란 창이 있는 창가에 앉아 우아하게 차도 마시고 시집도 읽으며 살리라 했다. 만족할 만큼 다 이루지 못했지만 나의 쉼터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관심 있는 분들께 안부 전화를 물어 본다.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막바지 더위를 잘 이겨 내고 있다는 반가운 목소리를 들려준다. 8월 한낮의 태양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어릴 적 그렇게 따뜻함을 원했던 햇살이지만 따가운 햇살이 나른한 몸을 일으킨다.

잘 알고 있는 동생이 수확해서 가져온 복숭아가 눈에 띄었다. 한입 깨물고 밖을 보니 폭염에 초록 풍광이 눈부시다. 애타게 기다리는 비는 오지 않고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의 땀을 흠치고 지나간다.

뒷뜰 텃밭에 호박잎과 고춧잎이 더위에 지쳐 늘어지고 성급한 고추잠자리가 원을 그린다. 저마다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이렇듯 마음을 치유해줄 쉼터에서 따뜻함을 느끼며 한참을 보았다. 이마에 송글 송글 땀방울이 맺히고 커피 잔이 바닥이 보이며 옛 추억에 젖어본다. 그렇게 햇살 드는 따뜻한 곳을 원했고 따뜻함을 원했기에 지금 덥다고 땀을 흘린 것이 축복이라고 본다,

가난했던 유년시절 그때는 엄마 아버지 오빠 언니 동생들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들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오직 햇볕 드는 따뜻함만 생각했던 어린 시절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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