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白華木, Birch 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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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白華木, Birch Wood)
  • 정홍용 안남화인산림욕장 대표
  • 승인 2019.01.3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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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용 안남화인산림욕장 대표

1958년 러시아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 주었지만, 러시아 당국의 압력에 수상이 거부 된 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가 있다. 오마 샤리프(Omar Sharif)와 줄리 크리스티(Julie Christie)가 열연한 영화의 촬영 장소는 대부분을 핀란드의 광활한 설원에서 찍었는데, 시종일관 자작나무가 눈에서 떠나질 않는다.

새하얀 눈 사이로 뽀얀 자작나무들이 보이는 정경은 마치 겨울동화처럼 다가와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생경(生硬)하게 느껴졌다.

필자가 핀란드 자작나무합판 수입알선 관계로 곧장 헬싱키(Helsinki)로 가지 않고 덴마크 코펜하겐(Copenhagen)을 먼저 들린 것은 코펜하겐에서 불과 40km의 거리에 위치한 동화작가 안데르센(Andersen)의 고향인 오덴세가 있고, 대문호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Hamlet)의 배경이 된 크론 보르성(Kronborg Castle)을 보기 위함이었다. 

성의 구석구석을 견학하면서 책에서 본 여러 장면을 떠올리며 수 시간을 보내는 맛은 너무나 현장감이 있어 느낌이 배가 되어 좋았다. 코펜하겐에서 헬싱키로 떠나는 크루저(cruiser)선 칵테일바에서 하이볼(highball)을 마시며 햄릿의 명대사 ‘사느냐,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부서지는 물결을 보면서 되뇌어 보았다.

피아노회사에서 일본 북해도 자작나무를 수입하여 피아노 액숀( action=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나도록 쳐주는 공이)에 단단하고 변형이 없는 자작나무를 사용한다. 일본 자작나무가 수출 금지되어 캐나다로 가서 자작나무 상담 후 내친김에 닥터 지바고의 일부 장면을 재스퍼(Jasper) 국립공원에 있는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에서 촬영했다 하여 현장을 가 보았다.

이곳은 죽기 전에 꼭 보어야 할 세계 절경 중 1, 2위를 다투는 곳으로 이웃의 밴프(Banff)와 더불어 자작나무도 많았다. 밴프에서 호텔에 여장을 풀자 호텔 지배인이 팸플릿을 펼쳐 보이며 마릴린 몬로(Marilyn Monroe)와 로버트 밋첨(Robert Mitchum)이 호연한 ‘돌아오지 않는 강(River of No Return)’을 구경하고 오라고 권유한다. 서부영화이면서 다소 이색적이고 서정적인 캐나디안 록키(Canadian Rocky)의 거대하고 웅장한 자연과 숲을 배경으로 한 수작(秀作)이다

1888년 대륙횡단철도 완공기념을 위해 영국 스코틀랜드 귀족풍의 초호화로 지어진 고색창연하고 고성 같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호텔(Fairmont  Banff Springs Hotel)이 숲속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숲으로 둘러싸인 장엄한 자태는 황홀함보다는 중후하기 그지없었고, 호텔 뒤쪽으로 흐르는 보우강이 굽이쳐 보우폭포(Bow Falls)를 형성하여 밋첨이 사력을 다해 뗏목을 젓는 명장면을 연출한 곳이다. 이 호텔은 너무나 유명한 곳이므로 최소한 2년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투숙하기 어렵다 하여 커피샵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내부시설만 둘러보고 나오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호텔 바로 옆 골프장에는 엘크와 커다란 뿔사슴이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누워 있기도 하고, 유황온천에서 내뿜는 온천향과 수증기가 아롱져 평화로운 이상향처럼 느껴졌다. 호텔 맞은편 언덕에 앉아 들려오는 보우강의 물소리는 몬로가 살룬( saloon=술집)에서 요염한 자태로 부른 테마곡  ‘돌아오지 않는 강’의 구슬프고 애절한 노래가 되어 들려오는 듯했다.
‘~ ~ ~ I lost my love on the river= 나는 강에서 내 사랑을 잃어버렸으니 ~ ~   You never return to me=그대는 영영 내게로 돌아오지 않겠지요~~~’
자작나무는 추운 지방에서 자라므로 단단하고 결이 고운데다 잘 썩지도 않음은 물론 벌레도 먹지 않아 팔만대장경의 목판 일부와 천마총에서 출토된 그림도 자작나무 껍질이었다.
사실 자작나무는 고무나무처럼 삐뚤삐뚤하게 자라고 직경도 그다지  굵지 않으며, 고작 20m 정도만 성장하여 재목보다는 합판, 집성목으로 많이 쓰인다.

남양재와 북미, 북유럽 지역의 목재류 인상으로 최근 러시아 산림개방 정책에 힘입어 값싼 러시아산 자작이 가구재, 악기재, 마루판, 집성목으로 각광을 받아 많이 수입되고 있다. 자작나무는 기관지염, 감염, 편도선염 등 염증과 이질, 설사, 습진 등 치료제로 널리 쓰인다.

우리가 설사를 하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정로환(正露丸)이다. 이 정로환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 후 만주에서 시베리아로 진출하면서 이질과 설사에 시달렸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작나무가 일병(日兵)들을 구해준 일등공신을 한 셈이다. 그래서 일본은 러시아를 정벌하자는 슬로건 아래 진군나팔이 그려진 약 포장에 칠정(征)자와 러시아라는 뜻의 이슬로(露)자를 붙여 세이로간(征露丸. 전후에 러시아의 항의를 받고 正露丸으로 정정됨)을 발명해 냈다.
요즘 차가(Chaga)버섯이 암과 성인병에 좋다고 야단들이다.
자작나무의 바이러스에 의해 착상하여 자작 수액을 먹고 자라 5~20년간 생장한 것을 채취한 것이 차가버섯이다. 

껍질이 종이처럼 하얗게 벗겨지고 얇아서 명함도 만들고, 연인들 끼리 연서를 주고받는 데도 이용되었다. 결혼식을 화촉이라 함은 초가 없던 옛날에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을 대용했기 때문에 화촉(華燭)이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는 겨울에는 몹시 춥고, 여름에도 서늘하여 입지조건이 맞아 자작나무 숲을 조성해 놓아 겨울이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시베리아 자작숲 설경을 대리만족 하는 명소가 되었다. 북유럽에서는 사우나에 필수적인 자작나무 가지 뭉치로 몸을 두들기며 건강을 유지하므로 생활의 반려자이기에 소중히 여기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로변, 아파트 단지에 입지조건과 기후조건을 무시한 가로수, 조경수로 심겨진 자작나무를 볼 때마다 애초로워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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