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불의 조화 속 40년 도자기 인생
상태바
흙과 불의 조화 속 40년 도자기 인생
  • 도복희기자
  • 승인 2019.12.12 14: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옥천요 이숙인과 아들 최석호의 도예 이야기
“나를 파먹은 세월, 흙과 내가 혼연일체”

“불을 만난 흙은 1300도의 뜨거움을 견디고 꽃일지, 생명일지, 마음일지, 사랑일지 무언가 담을 것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했다. 폭염보다 뜨거운 불을 만나 서늘한 느낌 안에 뜨거움을 감춘 도자기를 빚는 옥천요 대표 이숙인(71) 도예가를 만났다. 군북면 성왕로 1824-48에 위치한 옥천요는 야트막한 산길을 올라가 마을의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전통 가마인 장작가마가 한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단아한 도자기들이 가득했다. 드러나지 않는 색이었으나 기품 있었다. 40년 도예가의 인생이 작품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는 듯 했다. 짧은 탄성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한참 동안 도자기를 하나하나 감상하고 나서야 이숙인 도예가의 예술가로서의 삶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40년 흙과 불로 인생을 빚어온 장인의 목소리를 전한다.

△물레 앞에서는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1980년대 이숙인 도예가가 30대 초반이었을 때다. 아들(최석호·48)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한 길이었다. 처음에는 대전 대흥동에 있는 작은 공방에서 취미로 시작했다. 2~3년 하다가 그만둘 생각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문경에 가서 전통도자기를 만나게 되었다. 그 후 전통도자기의 매력에 빠져 도천 천한봉(87) 도예가를 스승으로 1984년부터 1990년대까지 사사받았다. 그 만남이 40년을 도자기에 몰입할 수 있는 끈이 되었던 것.
이숙인 도예가는 “내가 나를 파먹은 세월이었다”며 “물레 앞에 앉아 있으면 모든 걸 지워낸다. 아무 생각 없이 오직 흙과 나와 혼연일체가 되어 도자기 빚는 데만 몰입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흙을 만지고 작품을 만들면서 이미 다음 작품을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있다”며 “다음 작업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일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 오늘까지 이어오게 된 것”이라고 작품에 대한 열정을 전했다.

△전기가마와 전통가마의 차이
전기나 가스가마는 가두어 강제순환 시키므로 불이 고루 가게 되어 한 가마의 도자기들이 같은 문양의 제품이 나온다. 이와 달리 전통가마는 자연적으로 타서 불의 흐름에 따라 질감이 달라져 억지가 없고 자연스럽다. 전통가마에 불을 때면 앞에는 고온이고 가운데 부분은 중불, 뒷부분은 불이 약하다. 불의 온도에 따라 문양이 바뀌는 자연 문양이 나타난다. 가마 앞에는 재를 유약으로 바른 재받이(재를 몸으로 맞음)를 넣는다. 가운데는 분청도자기를 넣고, 뒤쪽에는 꽃 핀 그릇(산화와 환원이 겹쳐 이뤄진 그릇)을 넣는다. 전통가마에서 꺼낸 도자기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불의 세기에 따라 다른 그림이 그려지는 것. 이것은 불이 그린 그림이다. 이숙인 도예가는 “숨 쉬는 그릇으로 생명력이 있는 전통도자기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담담한 목소리로 전했다.

△도자기는 나의 삶
삐뚤어지거나 기울어져도 자신의 손으로 만든 작품은 이쁘다고 말하는 이숙인 도예가에게 도자기는 그녀의 삶이었다고 한마디로 말했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모든 것을 다 넣었다. 서운한 것, 기쁨과 슬픔이 작품 안에 다 들어가 있다. 도자기가 없었다면 세상을 떠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은 다른 곳에 가도 이곳 작업장이 떠돈다. 어디를 가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이유다. 세종시 영평사에서 전시회를 하는데 저녁 늦게 왔다가 새벽에 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작업장 가까이 있는 것이 편안하다”고 했다. 그녀의 인생을 담은 그릇이 그곳에 있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미소를 본 듯했다.

△옥천요 전수자 최석호 도예가
옥천요 전수자 최석호 도예가는 이숙인 도예가의 아들이다. 그는 2001년 충남대학교 항공우주학과를 졸업하고 비행기 조종사로 일하다 2006년 오사카예술대학교 부설 오사카 미술 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2008년 졸업제작전 및 졸업제작상을 수상한다. 이후 오사카 예술대학교 그룹 3교 합동전(오사카 산토리 미술관), 충청북도 관광 공예 상품 공모전 장려상, 제21회 대전광역시 미술대전 특선, 제10회 사발공모전 입선, 제14회 전주 전통공예 전국대전 특선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도쿄 신주쿠 게이오 백화점 모자전, 대전 고트빈 갤러리 모자전 등 전시회를 개최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비행기 조종사에서 도예가로 또 다른 인생의 선택은 어릴 적부터 보아온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이숙인 도예가는 아들의 작품에 대해 “하나하나 섬세하게 만져 어느 것 하나 도드라지거나 뽐내지 않으면서 비율이 정확하고 단정하다”며 “옥천요 전수자로 거의 완벽하게 전수받았다”고 평가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