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보네 증후군과 불이(不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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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보네 증후군과 불이(不二)
  • 박용진 시인
  • 승인 2020.04.2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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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시인
박용진 시인

 

현시대는 아포리아의 시대다. 아포리아는 무슨 뜻인가 aporia는 그리스어로 대화법을 통하여 문제를 탐구하는 도중에 부딪치게 되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라는 의미로 사람들의 많은 의견 대립으로 갈수록 사회는 갈등이 늘어가고 있다. 어떤 것에 대해 판단하려면 양면을 잘 살피고 객관적 입장에 서서 판단하기보다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와 자신이 믿는 것만 수집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난립으로 정치 종교의 신념을 강요하면서 다른 판단을 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폄훼하고 적대시하게 되었다.


필자의 경험이다. 5년 전 건축회사 야간 당직 근무를 하면서 신경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가 쓴『환각』이라는 책을 검색하면서 알게 된 샤를보네 증후군은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자들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지는 환영을 실제라고 느끼는 증상이다. 생소한 정보에 이런 것도 있는가 하고 있었는데 30분 뒤인 새벽 3시 반에 이웃 주택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사람 살리라는 고성에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사모님이 나오시면서 “괜찮아유, 우리 집 양반이 착각을 했어유” 바깥 어르신은 앞을 못 보는 시각 장애자이신데 누군가가 자신의 집을 다 부수는 환각을 경험하고는 소릴 질렀다는 것이다. 자신이 본 환각을 실제의 일로 믿는 남편분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여전히 씩씩거렸다.


알고 지내는 한의사분에게 물어봤다. 샤를보네 증후군을 아느냐고, 의사 선생님도 잘모르겠다는 샤를보네 증후군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심야에 컴퓨터로 검색해서 알게 된 현상을 30분 뒤에.


양자물리학(quantum physics)에서는 모든 물질은 분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 미립자, 소립자로 쪼개고 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 에너지만 남으며 파동 에너지는 시간과 공간을 뚫고 이동하면서 모든 만물을 잇는 근원을 이루고 있다. 샤를보네 증후군이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생긴 이유가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불이不二라는 말이 있다. 불이에 대한 설명은『유마경(維摩經)』에 나온다. 유마거사를 병문안 간 부처님의 제자들이 불이의 뜻에 대해 서로 토론한 것으로 절대 평등을 이야기한다. 현실 세계는 여러 가지 사물이 서로 대립되어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모두 고정되고 분리 독립된 개체가 아닌 하나라는 것. 양자물리학의 내용과 일치한다. 그렇기에 평생 접하기 어려운 샤를보네 증후군과 맞닥뜨린 것이다.


남의 말을 경청하기보다는 자신이 믿고 따르며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는 세태에 만물이 하나에서 비롯되어 모두 이어져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필자가 경험한 샤를보네 증후군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내가 경험하는 일체의 현상은 나 혹은 우리가 빚은 것들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물질세계라 불리는 이 세계는 상상과 행위의 같은 방향에서 비슷한 현상을 만들어 내고 보이지 않는 끈(초끈 이론)을 따라 사람과 사상에 대한 차별과 적대, 강요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통로를 경유하여 고스란히 내게 돌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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