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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구 수필가
  • 승인 2023.03.3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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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저녁 먹고 나면 이웃집에 가서 라디오 소리를 들었다. 공업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웃집 형이 진공관식 라디오를 만들고 안테나선을 지붕 위까지 연결하여 들었는데 저녁 먹고 마을 사람들이 그 집 마당에 앉아 연속 방송극을 듣곤 하던 때였다. 어렸던 우리 또래들은 장롱 같이 커다란 함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무척 신기해 했었다. “여덟 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HLKA KBS …, 뚜 뚜 뚜”. 그러면 옆에 있던 아저씨가 한마디 한다. “아, 이제 10시구나”, “우리들이 “여덟 시라고 했잖아요?” 하면, 아저씨는 정색을 하며 “허어, 이 녀석들 서울에서 여덟 시면 천안까지 오는 데 두 시간은 걸려.” 또 다른 이웃 아저씨는 “저 라디오 속에 아주 작은 사람들이 사는데, 신기하게도 그 사람들은 전기를 먹고 산단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런 말을 믿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마을에 텔레비전 수상 안테나가 세 군데 설치됐다. 하나는 마을의 최고 부자댁에, 또 하나는 천안고등학교에, 그리고 또 하나는 뒷동산 미국인 선교사 집에. 당시 최고 인기를 누렸던 프로레슬링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천안고등학교 교무실 앞마당에 모여들었다. 학교 측에서 텔레비전을 현관 교탁 위에 내놓고 관람을 하도록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화면이지만 100여 명(때론 20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김일 선수의 박치기에 환호를 올리곤 했었다.

특히 1969년 7월 20일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닐 암스트롱과 버드 올드린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첫 발자국을 찍은 날(우리나라는 7월 21일?)은 임시공휴일로 그 실황중계(아마 녹화된 내용인 듯)를 보면서 400~500여 명의 마을 주민이 천안고등학교 현관 앞마당에 앉아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올리기도 했었다.

초임 때 국민저축(약간 강제성이 있는) 적금을 들었는데 5년 만기가 돼서 찾게 됐었다. 그래서 큰애가 태어날 무렵 흑백텔레비전을 샀다. 지붕 옆에 안테나도 높이 세웠다(당시 집에 TV 수신용 안테나를 세우면 꽤 있어 보이는 집으로 인정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1년 1월 1일부터 컬러TV 방송이 시작됐다. 1985년 아이들도 크고 처형댁 딸이 대우전자에 다니기도 해서 사원 보급용으로 나온 포터블형 컬러TV를 구입하기도 했다. TV 때문에 라디오는 폐기물이 됐고 시간만 나면 TV 화면에 시선을 맞추는 게 일상이 됐다. 혹자는 TV를 바보상자라고도 했다. 바라보며 웃고, 울고, 주먹 쥐고 고함지르고 하기 때문에. 마땅히 여가를 즐길 것이 없는 무료한 생활에서 TV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생활필수품이 됐다. 아내는 연속 드라마를 좋아한다. 여행을 가서도 드라마 방영 시간만은 객실의 TV 앞에 앉는다.

2020년 2월 17일쯤 대전서구문학회 송○애 시인의 연락이 왔다. KBS 대전방송국 “아침마당에 출연하게 됐으니 준비해 달라”고. 19일 담당 작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22일 아침 8시 25분부터 방송되는 아침마당 프로그램을 생방송으로 녹화하기 위해 21일 오후 1시 30분까지 방송국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2019년 펴낸 대전서구청 공동체 사업 중 하나인 「할아버지 할머니 주머니속의 비밀」 책의 작가로 취재 대상인물과 같이 출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함께 글을 쓴 송○애 시인, 최재○ 시인, 도○회 시인과 취재 대상 노인 세 분과 출연하여 그간의 과정과 노인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전에도 OUN, CMIB 등에도 출연하거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지만 KBS 방송이라서인지 22일 아침 9시쯤부터 지인들의 전화와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방송 잘 보았다고. 며칠 후 동네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도 방송을 보았다고, 지인들, 친척들, 부여의 이○○교장과 교직 선후배들, 마을 어르신들, 교회 장로·집사님들이 방송 잘 보았다고 연락이 왔다. 골목길에 나가다 만난 얼굴만 아는 어르신 한 분이 또 아는 체를 한다. 특히 35~6년 전 천안의 한 학부 모가 연락을 했다. 방송을 보고 반가웠다고. 역시 방송의 힘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조급했던 젊은 날이 가고 여유로운 삶을 찾는 노년기에 방송에도 나가고 그에 관한 연락을 받는 것도 삶의 쉼이라 생각해 본다. 잊혔던 사람들과 교류를 갖는 것도 여유이다. 그 속에서 삶이 숙성되고 여물어 가는 것, 다시금 지난 날을 떠올리며 옛 친분을 기억하고 그들을 축복하는 아름다움을 만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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