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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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07)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7.13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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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든 것은 뭐니?”

“공작숙제인데 내가 만든 거예요.” “정말 네가 만들었어? 어떻게 그렇게 잘 만들 수가 있니?”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밀짚을 잘 엮어 만든 새장이 우리 2학년짜리 아들이 만들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손재주가 뛰어났지. 네가 4학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숙제한다면서 무를 반쪽씩 잘라, 하나는 냉장고에, 또 하나는 실내에, 마지막 하나는 베란다 양지에 놓아두고 관찰하여 보고서를 쓴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놓아둔 무를 10일동안 매일 관찰하여 어디에 놓아둔 것이 가장 상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지를 관찰해서 보고서를 써내는 숙제라고 했다. 그 후 나는 잊고 있었다. 그런데 네가 열흘이 지난 후 말했지.

“햇볕에 말린 것이 제일 상하지 않았고, 냉장고에 둔 무는 조금 상한 듯 색이 변했고, 실내에 둔 것은 곰팡이가 나고 상해버렸어요. 결론은 햇빛 건조법이 가장 보관법으로 좋은 것 같아요. 그다음이 냉장고예요.”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 네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지. 처음 받는 선생님 전화라서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긴장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석원이가 과학실험 보고서를 냈는데, 너무 잘 써서 아무리 보아도 석원이가 쓴 것 같지가 않아서요. 어머니가 교수니까 석원이 보고서를 많이 도와주셨나 본데 이렇게 아이들 숙제를 어머니가 해주시면 아이가 직접 경험할 기회를 빼앗기게 되니 다음부터는 그냥 석원이가 하게 하고 옆에서 지켜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러면 그렇지! 선생님이 엄마가 써줬다고 생각할 만큼 엄마 아들이 잘 썼다는 것인가?’ 놀랐고 또 기뻤단다.

“아니요, 저는 손끝 하나도 댄 적이 없습니다. 실험 숙제를 한다고 무를 잘라 여기저기 놓고 보고서 쓴 이야기를 들었을 뿐 보고서 쓰는 것 은 본 적이 없는데요.” 그러자 이번에는 오히려 선생님이 놀랐다. “아니 그럼 어머니께서 도와주지 않고 석원이 혼자 쓴 것이라구요? 믿을 수가 없네요.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쓴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 잘 써서 제가 오해를 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엄마도 네가 쓴 보고서가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퇴근하자마자 네게그날 전화 내용을 말했다. “아이, 선생님은 보고서 돌려주실 때도 누가 썼냐며, 엄마가 도와주셨냐고 묻길래 아니라고 대답했는데 왜 내 말을 안 믿고 엄마한테 전화까지 해.”

엄마는 당장 그 보고서를 보자고 했다. 보고서를 읽으면서 엄마는 왜 선생님이 네가 쓴 게 아니라는 확신을 하고 엄마에게 전화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엄마 역시 그 보고서를 4학년인 네가 썼다고 믿을 수가 없을 만큼 체계적인 연구방법론적으로 비교 분석하여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엄마는 가슴이 떨릴 만큼 감격했다.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아!

네가 3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했던 기억을 하면 지금도 다리가 후들 거린다. 어느 날 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으니 어떤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이 교통사고가 났으니 병원으로 빨리 오세요.”

전화를 끊고 나서 정신없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운전대를 잡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침대에 누워있는 너는 머리가 찢어져서 일곱 바늘을 꿰맸고 다리는 온통 상처로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괜찮니?” “엄마 죄송해요. 우산도 책가방도 다 날아가고 안경도 깨져 없어져 버렸어요.”

“괜찮아, 그게 무슨 대수니?”

그 와중에도 첫마디가 소지품이 다 없어져서 죄송하다니! 엄마는 혼란스러웠다. 승용차에 치여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어린아이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적절한 반응일까 하고 엄마는 너의 그 말도 마음에 걸려 마음이 아팠다. 사고를 낸 사람은 연세대 학생이었다. 죄송하다면서 자기가 데모를 해서 집행유예 중이었는데, 또 사고를 냈으니 이번 일로 경찰에 붙잡히면 자기는 감옥에 갈 거라며 경찰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러고는 합의를 하자고 했다. 나는 27살 연대 학생이라는 말에 마음이 약해졌다. 교수로서 마치 내 학생을 보는 듯했다. 고의적인 사고도 아니고, 불행하게도 하필 하교하는 우리 아들을 친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걱정하지 말고 가요. 경찰에는 알리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합의서도 써 줄 테니 내일 다시 만나자. 이 병원은 개인 정형외과이니까 내가 국립의료원으로 우리 아이를 옮겨서 그곳에서 검사를 종합적으로 해보고 치료도 그 결과에 따라 받을 것이다. 내 아들은 내가 알아서 치료를 받을 테니 안심하고 집에 가서 쉬어요.”

불안해하는 그 학생이 너무 딱해 그렇게 안심시켜 일단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곧 너를 국립의료원으로 옮겼다. 엄마는 정신이 없었다. 차에 치여 앞으로 날라 나가떨어진 너를 종합검사부터 서둘러야 하는 제정신이 아닌 채로 주차하고 너를 데리고 응급실로 가서 입원시키고 나오니 엄마 차가 사라져버렸다. 엄마가 제정신이 아니라 그만 차 키를 꽂아둔 채 너를 데리고 급히 응급실로 갔는데, 그 사이 누가 차를 가져간 것이다. 차 분실 신고를 경찰에 하고서 다시 병실로 가서 네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머리를 일곱 바늘 꿰맨 상처와 온몸에 온통 찰과상과 멍이 들어보기가 흉할 정도였으나 X-레이로는 문제없다고 하기에 진료비 를 내고 택시를 잡아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11시경 그 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경찰에서 전화 오지 않았나요? 그때 사고를 목격한 사람이 신고했을 수 있어 경찰에 신고 되면 잡혀갈까 봐 불안해서 집에도 못 들어가고 밖에서 전화를 해보는 겁니다.”

불안한 목소리에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걱정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서 자요. 혹시 경찰이 전화해도 내가 잡혀가지 않도록 경찰에 얘기해줄 테니 염려 말아요.”사고 첫날 밤, 사고로 인한 정신적 트라우마가 컸던지 너는 자면서 침대에 오줌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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