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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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08)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7.20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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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한약을 지어 먹이면 좋다는 얘기를 듣고 한약 한재를 지어 먹였다. 다음날 사고 낸 학생이 집으로 찾아와서 합의금으로 50만 원 받았다고 합의서에 써주면 보험회사에서 돈을 받아 약값과 가방, 안경, 치료비 등을 주겠다고 하길래, 나는 그 학생이 원하는 대로 해서 보냈다.

사고 다음 날,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 학생이 집에 들러 너한테 이런 약속을 했다지? “내가 앞으로 삼촌 노릇을 하겠다. 곧 일본에 갈 일이 있는데 일본에서 스키를 사다 주겠다.” 어릴 때부터 스키를 좋아하고 잘 타던 너는 그 말을 찰떡같이 믿고 매일 손꼽아 기다렸다. 엄마는 속으로 약속을 믿고 기다리고 있는 어린 네가 만일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내심 걱정도 되었다. 엄마가 걱정했던 대로 그 학생은 합의금도 스키도 그리고 안경, 가방, 약값, 치료비도 어느 것 하나 지키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그 학생이 임신한 여학생을 데리고 와서 말했지. “약혼자인데 임신해서 서둘러 결혼을 하려고 한다. 다음 주가 결혼식이라 신혼여행 다녀와서 다시 뵙겠다.” 나는 E대 학생인 약혼자를 보고 또 마음이 약해졌다. ‘신랑이 저렇게 집행유예 기간에 사고를 쳤으니 얼마나 불안할까? 태아에 안 좋을 텐데….’

결혼식 잘하고 신혼여행도 마음 편히 잘 다녀오라며 축하까지 해주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함흥차사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무렵 내가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 학생은 변명으로 일관했다.

“내가 학생한테 그동안 몇 번 전화할까 하다가도 내가 돈 달라는 전화로 생각할까 봐 참았다.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학생한테 돈은 한 푼도 받을 생각이 없다. 이미 병원 치료도 끝났고 가방도 사고 안경도 맞추었다. 합의금 같은 돈 안 줘도 된다. 내 아들 치료비로 쓴 것이니까 아까울 것도 없다. 단 한 가지 내가 학생한테 꼭 이 말은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 살지 마라. 무엇보다도 이제 3학년인 어린 우리 아이한테 왜 지키지 못할 쓸데없는 약속을 해서 지금까지도 삼촌이 스키 사다 준다 했다고 기다리게 하냐, 결국 학생의 가장 큰 죄는 사고 내서 일곱 바늘 꿰매고 다치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아들의 순수한 동심에 상처를 준 것이다. 내가 이것만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기에 마지막으로 학생한테 이 말을 하고자 전화를 한 것이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사람이 그렇게 속임수를 쓰고 사탕발림으로 일을 모면하기에 급급해서 살면 안 된다. 당신이 학생이라기에 우리 학생을 생각하면서 선생으로서 대해줬는데 어찌 이리 파렴치할 수 있냐.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살지 마라.” 그러자 그 학생이 말했다.
“세상에서 선생님 같은 분은 처음 봤습니다. 정말로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잘못을 알았으면 됐어요.” 그것으로 사건은 끝이 났다.네가 4학년 때 시력이 나빠져서 시력회복훈련원에 등록했다. 그 훈련원은 고속버스터미널 근처 반포동에 있어서 압구정동에서 꽤 먼 거리였다. 그곳을 너는 걸어 다녔지. 어쩌다 노는데 정신이 팔려 못 가게 된 날이면 엄마는 몹시 화를 내며 너를 야단치곤 했지. 훈련원을 빼먹으면 엄마가 매를 때린 것도 그때였지. 나중에 국립의료원 안과의사 선생님이 시력이 떨어져서 안경을 맞춰야겠다는 말을 듣고 엄마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지. “이렇게 잘생긴 얼굴에 안경을 어떻게 씌우나?”엄마는 네 시력이 회복될 수 있다는 말에 훈련원을 열심히 다녀 안 경을 벗기를 바랐다. 당시 훈련원에서 산 기계가 일제였는데, 18만 원으로 고가제품이었다. 그런데 그 기계를 탁자에서 떨어뜨려 고장이 나 버렸지. 훈련원에 알아보니 한국에서는 수리 불가능해서 일본으로 보내야 하는데, 다시 받는 데까지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고민하던 때였는데 나는 네 방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기계를 다 뜯어 분해해서 방바닥 가득 늘어놓고 있지 않겠니. 엄마는 그나마 일본에 보내서 고칠 수도 없게 버려놓았다고 버럭 화를 냈지. 그때 너 는 500원만 달라면서 말했지.

“이 기계의 원리를 알아냈어요. 용수철의 원리에 의해 찰칵찰칵 돌아가며 화면을 바꾸게 되어있어요. 내가 그 원리를 알았으니 문방구에 가서 납땜할 거리와 용수철 한 개만 사 와서 고치면 다시 쓸 수 있어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단다. “한국에서 고칠 수 없어 기계를 만든 일본으로 보내 고쳐야 한다는 것을…. 네가 뭘 알아 고친다고 그래? 그나마 이제 완전히 망가뜨려 일본에 보낼 수도 없잖아.” 그러면서 어차피 망가진 것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500원을 주었다. 너는 바로 뛰어나가 문방구에서 뭔가를 사와 방에서 한참을 씨름했지. 엄마는 이미 기계를 포기했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고 네가 기계를 들고나오며 말했다.“엄마, 제가 고쳤어요. 이거 보세요.” 고쳤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는데, 정말 기계가 정상적으로 찰칵찰칵 작동하는 게 아니겠니? 어떻게 다 뜯어놓은 부품을 맞추고, 고쳤는지 엄마 눈을 의심했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 눈앞에서 기계는 정상 작동되고 있었으니…. 5학년 때 너는 친구가 선경(SK) 사장 아들이라면서 그 집에 자주 놀러 갔다. 그때야말로 컴퓨터라는 단어도 들어보지 못하던 때였다. 너는 그 집에 가면 ‘컴퓨터’라는 것이 있는데, 어깨너머로 배워 해보니 정말 재미있다며 좋아했다. 컴퓨터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엄마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네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해보겠다고 공부도 내팽개치고 미친 듯이 다녀 크게 야단을 쳤었지. 쓸데없는 데 정신 팔려 다니지 말고 학교 숙제나 제대로 하라고 말렸다. 너는 엄마 때문에 더는 컴퓨터를 할 수 없었지. 지금 생각해보니 컴퓨터가 뭔지도 모르는 무지한 엄마가 너의 재능을 키워주기는커녕 학교 공부나 하라면서 막아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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