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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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10)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8.03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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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기가 막힌 것은 저녁 일찍부터 누워 자기만 하는 너를 불러 앞에 앉혀놓고 아빠는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 셋째도 건강이니 너는 최소한 7시간 이상은 자고 잘 먹고 건강을 챙기도록 해라.” 하는 것 아닌가? 그 아빠에 그 아들이었다. 엄마는 기가 막히고 말문도 막혔다. 

그럴때마다 엄마는 아빠가 미워 큰소리로 화를 내곤 했지.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겠기에 남들처럼 영어 수학 학원에 등록했다. 역시 너는 학원도 가는 날 반, 안 가는 날 반이었다. 상문고등학교 1학년 때 1등 하던 너에게 담임선생님은 큰 희망을 걸었었는데…. 바로 2학년에 와서 네가 이럴 줄 그 누가 알았겠니? 엄마도 나중에는 지쳐버렸고 모든 것을 네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열병 같은 사춘기는 고2를 거쳐 고3까지 이어지는 듯했다. 엄마에게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세월이었던 것 같다. 눈치 없는 세월은 흘러 대학입시 시험이 다가왔다. 

그때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이던 아빠는 전자공학을 원하는 너에게 미래는 환경이 중요한 세상이 될 것이니 환경을 전공하는 게 좋다고 권하셨다. 엄마는 그것도 못마땅했다. 네가 원하는 전공대로 놔두지 왜 구태여 환경을 전공하라고 권하는지 엄마는 극구 반대했지만, 결국 네가 아빠의 권유를 받아들여 네가 환경학 분야에 지원하는 것도 속이 상했다. 엄마가 법대나 상대를 권해도 싫다며 과학자가 되어 동생하고 NASA에서 일하고 싶다고 우겨대던 네가 결국은 그런 결정을 내리더구나. 고려대학교에 지원하여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엄마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는지 모른다. 이모로부터 “다른 집에서는 고대 합격했다고 잔치를 열어주는데 그렇게 울면 남들이 욕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엄마는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 후, 엄마가 네 방에 들어가서 붙박이장을 열어보았다. 담요로 가려놓아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길래 담요 한 장을 잡아 제치니, 순간 책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깜짝 놀라 무슨 책인가 보고는 놀라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 책은 몽땅 ‘무협지’였다. 네가 고3 동안 엄청난 무협지를 담요로 가려놓고 읽고 있었다니, 억장이 무너졌다. 이 많은 무협지를 읽어대고 딴짓을 했는데도 대학에 합격했다니 정말 칭찬을 해야 할 일인지, 벼락을 쳐야 할 일인지 머리가 하얘지더구나. 그때 네 말이 더 가관이었지.

“엄마, 우리나라에 나온 무협지는 안 읽은 것이 한 권도 없이 다 읽었어요. 그래서 한문은 나만큼 많이 아는 사람이 없지!” 네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전문대학 총장협의회에서 총장들이 서부에서 동부로 미국의 명문대학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총장님들께 사전 양해를 얻어 엄마는 네가 대학 입학 전에 미국의 역사 깊은 명문대학을 함께 돌아볼 기회를 갖기로 하고 동반 여행을 계획했다. 

네가 태어난 후 첫 해외여행으로 세계적인 명문대학을 방문하는 것은 나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네가 호흡하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넓고, 네가 꿈을 꿀 수 있는 세계가 얼마나 크게 열린 공간인지 직접 느껴 앞으로의 대학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학부터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컬럼비아대, 코넬대, 보스턴대 등 말로만 듣던 최고의 대학을 단숨에 둘러보며 참으로 위대한 미국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엄마 역시 이렇게 미국 최고 명문대학들을 한꺼번에 방문해 볼 기회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한 후 친구 좋아하는 너는 물 만난 고기였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대학 생활을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자의 인생에서 병역의무라는 군대 경험은 고생을 모르고 자란 신세대인 네게 큰 보약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물론 군이라는 세계에 무식한 엄마가 아무것도 모르고 네게 말도 하지 않고, 아빠하고만 상의 해서 너를 군대 보내려고 한 일로 해프닝은 있었지만…. 기왕에 갈 군대라면 네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경험하는 것이 빨리 인생을 깨우치고 제대로 시간을 쓰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좋은 네 머리로 세상의 이치를 빨리 깨달을수록 젊은 시절에 낭비적인 시간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어차피 군대 가면 고생할 것이니 누구보다 건장하고 튼튼하게 키워놓은 내 아들이니 추운 겨울 추위도 이겨내고 국가를 위해 전방에서 극한도전을 해보는 것은 네 생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다시 없는 귀중한 생의 체험이 될 것이라는 엄마 나름의 굳은 믿음 때문이었다. 

이제 고백하건대, 사실은 아빠께 엄마가 부탁했다. 아빠 후배가 그 당시 병무청 차장이었다. 아빠가 그 후배에게 전화하여 너를 전방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하라고 말이다. 아빠가 엄마 뜻을 알기에 동의하고 전방으로 너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후배인 병무청 차장이 “선배님 제 가 병무청에 근무하는 동안 이제껏 자기 아들을 전방으로 가지 않게 후방으로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은 많지만, 전방으로 보내 달라는 부탁은 처음 본다.”고 해서 아빠도 좀 당황스러웠다고 하셨다. 그렇게 반대 부탁이다 보니 12월이 되자 군대 입영통지서가 날아왔다. 12월 20일까지 증평 훈련소로 입소하라는 군의 명령서였지. 네가 먼저 배달된 통지서를 받아들고 놀라서 안방으로 뛰어와 물었지. “엄마가 혹시 자원입대 신청서 냈어요?”

나는 네게 아니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했지. 너는 요즘 세상에 신청하지 않고는 절대 입영통지서가 나올 수 없다며 계속 엄마에게 물었지. 엄마는 그걸 전혀 모르고, 옛날처럼 군에서 통지서를 보내면 누구나 다 가는 것으로 알고 몰래 부탁을 한 것이었단다. 그때 네 말을 듣고 엄마가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너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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