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향한 ㈜유명의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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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향한 ㈜유명의 비상
  • 홍용훈 기자
  • 승인 2026.04.16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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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의/기/업/인 (주)유명 김종율 대표


기계의 신 김종율 ㈜유명 대표가 쓴 성공 신화
옥천 기업인이 일궈 나가는 하수관의 기술 혁명
옥천 기업인연합회 회장 “옥천의 미래, 기업에 있다”

 

 

김종율 대표
김종율 대표

 

옥천군 기업인연합회를 17년째 이끄는 김종율(61) 회장(㈜유명 대표)의 집무실은 거대한 ‘특허증명서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벽면 사방을 가득 채운 특허 액자들은 그가 업계에서 ‘기계의 신’이라 불리기까지 쏟아부은 집념의 산물이며 어떠한 파고에도 흔들리지 않고 기술 외길만을 걸어온 장인정신의 결정체다. 

옥천의 빈농에서 태어나 세계 시장을 누비는 글로벌 강소기업을 일궈내기까지 그의 34년 경영 인생은 지역경제를 넘어 대한민국 산업 현장의 살아있는 성공 신화로 평가받고 있다.

김 대표는 하수관을 단순한 배수 시설이 아닌 ‘지구의 건강을 지키는 토양의 혈관’으로 정의한다. 

“사람의 혈관이 터지면 생명이 위태롭듯 하수관이 새면 땅이 병듭니다. ㈜유명은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깨끗한 지구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제품을 만듭니다”

이러한 그의 신념은 타협 없는 기술 투자로 이어졌다. ㈜유명이 매년 매출액의 5%를 꾸준히 R&D(연구개발)에 쏟아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후 하수관의 누수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고강도 PE(폴리에틸렌) 하수관을 개발하고 제조 기계부터 완제품까지 전 공정을 아우르는 독보적인 수직 계열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모두 ‘미래 토양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됐다.

단순히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사를 넘어 기술로 환경을 치유한다는 김 대표의 기업 정신은 이제 베트남과 일본을 넘어 두바이까지 뻗어 나가며 세계 토양의 미래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안주만 하면 반장뿐…

김 대표는 옥천공고 기계과를 졸업한 후 1983년 대우자동차에 입사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현장에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자가 대부분이었기에 기계과 전공자인 그는 소위 ‘엘리트’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스무 살 청년 김종율의 눈은 이미 대기업의 울타리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나중에 반장은 하겠더군요. 하지만 제 인생의 목표는 거기까지가 아니었습니다”

안정적인 대기업이었지만 그는 입사 3개월 만에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취업 유지 기간을 채우자마자 대우자동차의 협력사인 상신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기업의 부품으로 사느니 현장의 밑바닥부터 기술의 정수까지 통째로 배우겠다는 계산된 도전이었다.

독학으로 판금 기술을 익히며 밤낮없이 현장을 누빈 결과 그는 불과 22세의 나이에 공장장이라는 파격적인 직함을 달았다. 노사 분규 당시 3개월 치 밀린 임금을 요구하며 사측을 거칠게 압박했던 그였지만 정작 협상 테이블에서는 회사의 재무 구조와 납품 단가까지 꿰뚫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의 명민함과 정직함에 감탄한 사장은 경영권 전반을 그에게 맡기는 파격적인 신뢰를 보였다.

군 복무 후 판금산업에서 실전 경험을 더하고 사촌 형의 사업을 돕던 그는 1992년 자본금 920만 원을 들고 대전 오정동에 ‘금화기계’를 창업했다. 처음 시작은 용접기와 산소 절단기뿐이었지만 기술력은 독보적이었다. 30분마다 불량이 나던 기계를 일주일 만에 고치고 3년간 방치된 중고 기계를 하루 반 만에 되살려내자 업계에선 그를 ‘기계의 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시련을 딛고 유명으로 우뚝

시련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거래처 연쇄 부도로 9억 원이 넘는 빚을 졌다. 집을 팔고도 5억 원의 부채가 남은 파산 위기였지만 정부의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붐이 일자 전국의 업자들이 그를 찾아왔다. 관련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술자가 바로 김 대표였기 때문이다. 부도 1년 만에 모든 채무를 갚은 그는 2001년 고향 옥천에 공장을 신축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러나 1999년 그는 중국시장 진출 과정에서 파트너에게 설비를 빼앗겨 막대한 손실을 입는 시련을 또다시 겪었다. ‘잘 나가던 회사가 폭싹 주저앉았다’고 회상할 만큼 힘든 시기였지만 그는 다시 사업 구조를 뒤집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기계 제작을 넘어 하수관 제품을 직접 생산·판매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2002년 상호에서 ‘기계’를 떼고 ‘㈜유명’으로 법인 전환하며 제품 중심 기업으로 거듭난 결단은 적중했다. 

이름 그대로 ‘유명’해진 지금도 그는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수관의 노후로 인한 누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품 개발에 주력해온 ㈜유명은 이제 하수관을 넘어 수도관, 지중 전송관 등 제품 다양화와 기술력 향상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집념 덕분에 내수는 물론 중국, 베트남, 일본, 두바이 등 해외 시장까지 수출 저변을 넓혔다.


농사만으로 옥천의 미래 없다

김 대표는 2010년부터 옥천군 기업인연합회장을 맡아 17년째 지역 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1원 한 장 틀리지 않는 투명한 결산’은 그가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비결이다. 하지만 지역 행정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날카롭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고 슬로건만 내걸지 말고 바닥부터 지원해야 합니다. 연합회 사무실 임대료조차 지원되지 않는데 이게 무슨 기업 친화 도시입니까” 그는 옥천이 여전히 ‘농업 정책’에만 매몰되어 있다고 꼬집는다. 

“10년 전부터 옥천이 기업에 정성을 쏟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외쳐왔습니다. 인근 지역이 지원금을 앞세워 대기업을 유치한 사례를 보십시오. 옥천도 기업 유치 전담팀(TF)을 꾸리고 인허가를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파격적인 행정이 절실합니다”


목표를 100층으로 세워라

인생의 파고를 넘으며 50대에 광운대 경영학과에 진학해 학사 학위를 따낸 김 대표는 지금도 AI(인공지능)와 첨단 기술을 공부하는 ‘청년’이다. 내년 3월 회장 임기를 마치는 그는 후배 기업인들에게 실전의 지혜를 전했다.

“100층을 목표로 하면 반만 성공해도 50층이지만 10층을 목표로 하면 다 올라가야 고작 10층입니다. 목표를 크게 가지십시오. 돈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이고 그 사람을 얻는 힘은 결국 정직한 신용에서 나옵니다”

사람이 큰 자산이라 말하는 김종율 대표. 그의 굽이진 인생길은 곧 옥천 경제가 나아가야 할 ‘도전’의 이정표였다.
 



 

회사 전경
회사 전경


㈜유명은 독보적인 제조 기계 제작 기술과 제품 생산 능력을 동시에 갖춘 국내 유일의 하수관 전문 기업으로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정직한 신용을 바탕으로 친환경 PE 하수관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주식회사 유명(www.umyung.com)
(우 29043) 옥천군 옥천읍 옥천동이로 387-57(구일 농공단지)
Tel. 043)731-1860~3   Fax. 043)731-1864


회사연혁

1992. 금화기계 설립 (대전 대덕구 오정동)
1996. 유명기계로 상호 변경
1997. 사업장 이전 (대전 대덕구 대화동)
2000. 사업장 이전 (현,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구일리 830. 구일 농공단지)
2002. ISO 9001 인증 / ISO 14001 인증/ PE 이중벽 및 삼중복층벽 하수관 생산
2003. ㈜ 유명으로 법인 상호 변경 / 품질보증업체 지정(Q마크 인증) / 한국플라스틱 표준시 인증(PL 인증) / 우수단체 표준 제품 표시 획득
2005~2010. 신기술 벤처기업 지정 (중소기업청)/복합복층벽 하수관 성능인증 (중소기업청) / 850 Ton 사출기도입, S.O.T 소켓 직접생산 개시
2010~현재. 가족친화 인증 / 환경표지 인증/파이프 3호기 생산라인 교체 / 유공관 타공기 구입 / 제품보관 창고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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