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대청호는 말이 없습니다. 선거의 함성이 잦아든 들녘에는 다시 모판이 실려 나가고 이원의 묘목밭에는 어린 나무들이 묵묵히 제 키를 키웁니다. 안남·안내의 산자락에는 초록이 한층 짙어지고 청산·청성의 논배미에는 물 댄 무논이 고요히 하늘을 담습니다. 시끄러웠던 한 철이 지나고 옥천은 다시 제 호흡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 고요한 들녘 앞에 서서, 오래 묵혀 둔 인사 한마디를 군민 여러분께 올립니다.
먼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후보였던 저의 몫입니다. 군민의 마음에 온전히 가닿지 못한 부족함을 저는 바깥에서 찾지 않겠습니다. 저를 믿고 손잡아 주신 분들께는 그 믿음에 끝내 보답하지 못한 송구함을 다른 선택을 하신 분들께는 그 뜻 또한 무겁게 받들겠다는 말씀을 함께 올립니다. 군민의 뜻보다 무거운 것은 없습니다. 저는 그 결과 앞에 겸허히 머리를 숙입니다.
함께 비를 맞으며 뛴 동지들이 있습니다. 밤낮으로 골목을 누비고 군민의 손을 맞잡았던 후보들 제 일처럼 발 벗고 나서 주신 수많은 이웃들입니다. 새벽밥을 지어 들려 주시던 어머니 같은 분들 길목마다 손을 흔들어 주시던 어르신들 아무 말 없이 등을 두드려 주던 벗들 그분들의 땀과 진심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 마음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미처 다 갚지 못한 고마움은 앞으로의 시간으로 천천히 갚아 가겠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으레 잘잘못을 따지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지나간 일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는 그 다툼으로는 무너진 자리에 벽돌 한 장 올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화합이 누군가의 허물을 헤아리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넘어진 이를 일으켜 세우는 손에서 멀어진 마음에 먼저 건네는 한마디에서 저는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화합을 말하는 방식 또한 화합을 닮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먼저 손을 내밀기로 했습니다.
그런 뜻에서 군정의 무거운 책임을 맡게 된 황규철 군수께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선거는 끝났고 옥천의 살림에는 더 이상 여와 야가 따로 없습니다. 군민의 삶을 한 뼘이라도 낫게 하는 일이라면 저는 자리를 가리지 않고 기꺼이 힘을 보태겠습니다. 그것이 군민을 위해 한 표를 청했던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고 믿습니다.
누군가는 묻습니다. 이제 어찌할 셈이냐고. 저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저는 옥천을 떠나지 않습니다. 옥천은 제가 태어나 자란 땅이고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던 그 향수(鄕愁)의 노래가 흘러나온 고장입니다. 넓은 벌 동쪽 끝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그 들녘의 정서가 곧 저의 뿌리입니다. 옥천읍 장날의 북적임도 군북·군서 들녘의 노을도 안내·안남 강마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도 저는 선거 때문에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선거가 끝났다고 하여 그 사랑이 끝날 까닭도 없습니다.
이제 저는 더 낮은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겠습니다. 지난 시간 저는 옥천의 숙제를 한 번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습니다. 그 공부를 그 발걸음을 저는 이제 ‘자리’가 아니라 ‘정책’으로 군민께 다시 가져가려 합니다. 제가 군민께 다가설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길은 결국 군민의 살림살이를 바꾸는 정책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옥천은 오래 ‘내어준 땅’이었습니다. 대청호의 맑은 물을 위해 마을이 잠기고 그 물을 지키느라 사십 년 넘게 규제의 멍에를 짊어졌습니다. 정작 그 물로 목을 축이는 도시는 따로 있는데 옥천은 집 한 채 고치고 작은 일터 하나 들이는 일에도 손발이 묶여 있습니다. 저는 이 멍에를 푸는 일이 옥천의 생존이라 믿습니다. 여기에 무슨 여야가 있겠습니까. 옥천이 짊어진 짐을 세상에 알리고 결정이 내려지는 자리에까지 군민의 목소리를 실어 나르는 일 오래 중앙의 문턱을 넘나든 저의 쓸모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길과 철길로 세상과 더 가까이 잇는 일 이원의 묘목과 옥천의 포도·복숭아가 흘린 땀만큼 제값을 받는 일 빈집이 늘어 가는 마을에 다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게 하는 일 어르신이 외롭지 않고 청년이 떠나지 않는 옥천을 만드는 일이 모두가 선거가 끝났다고 미뤄 둘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살림살이입니다. 저는 옥천에 이로운 일이라면 누가 추진하든 두 손 들어 돕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설 수 있는 어느 자리에서든 그 일들을 끝까지 연구하고 발로 뛰겠습니다. 그것이 결과 앞에서도 변하지 않는 저의 약속입니다.
부디 오해는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무엇을 겨냥한 포석이 아닙니다. 자리를 탐해서가 아니라 이 땅과 이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봄이면 모판을 나르는 들녘과 새벽 오일장 좌판 사이를 마을 경로당과 회관 사이를 저는 군민과 같은 호흡으로 오가겠습니다. 앞서서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군민의 반걸음 뒤에서 함께 걷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옥천의 내일은 누구 한 사람의 공약으로 지어지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들녘의 모를 온 마을이 손 모아 함께 심듯 우리가 어깨를 걸고 한 줄 한 줄 심어 갈 때 비로소 푸르러질 것입니다.
돌아보면 이번 선거가 저에게 남긴 것은 결과의 아쉬움만이 아니었습니다. 골목에서 맞잡은 수많은 손 부족한 사람을 끝까지 믿어 주신 따뜻한 눈빛 말없이 두드려 주신 등 그 모든 것이 제가 옥천에 진 빚입니다. 그 빚을 저는 군민의 삶 곁에 머무는 일로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갚아 가겠습니다.
옥천의 내일은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내미는 손에서 열립니다. 진보든 보수든, 저를 지지하셨든 아니든 우리는 결국 같은 들녘에서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가을을 기다리는 한 식구입니다. 함께 가자고 다시 일어서자고 우리 옥천의 내일을 위해 한자리에 모이자고 저는 오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 손을 먼저 내밉니다. 들녘의 모가 진흙에 뿌리를 내리듯 우리의 마음도 이 땅에 다시 뿌리내릴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그 푸른 들녘을 저는 군민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걷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