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예술인을 찾습니다.”
옥천군 지역 예술인 DB 구축 안내문 앞에서 한참 발걸음을 멈췄다.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남았다. 옥천에는 오래전부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예술인들이 있다. 붓을 들고 글씨를 쓰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흙을 빚는 사람,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사람들. 곳곳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역 문화예술을 지켜왔다. 하지만 정작 누가 어떤 분야에서 활동하는지 어떤 작품을 만들고 어떤 경험을 쌓아왔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었다. 행사나 전시를 준비할 때도 지역 예술인을 찾기보다 외부 인력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 이제라도 예술인 DB를 구축하는 일은 늦었지만 꼭 필요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서예에서 한 글자를 쓰려면 먼저 첫 획의 위치를 보아야 한다. 어느 획이 앞서고 어느 획이 뒤에서 받쳐줄지 보지 못하면 글자는 쉽게 흐트러지고 중심을 잃는다. 지역 문화도 마찬가지다.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문화의 전체 짜임이 보인다. 예술인 DB는 단순한 행정편의를 위한 명단을 만드는 일이 아니고 옥천 문화의 지도를 그리는 일이며 보이지 않던 예술인을 지역 안으로 드러내고 흩어진 활동을 한자리에 올려놓는 작업이다.
옥천군은 이번 사업을 통해 예술인의 프로필과 주요 경력, 활동 포트폴리오 등을 등록받는다. 이 자료는 문화예술 정책의 기초자료가 되고 각종 행사와 공모사업, 문화 프로그램을 추진할 때 지역 예술인을 연결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방향은 분명 옳다. 하지만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의 입장에서는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등록만 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예술인에게 필요한 것은 이름을 올리는 일이 아니라 활동할 수 있는 기회다. 행사 한두 번 참여하는 것으로는 예술인의 삶이 이어지지 않는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재료를 준비하고 작업할 공간을 마련하고 전시를 준비하고 홍보하고 때로는 제자를 가르쳐 다음 세대를 키우는 일로 직접 강의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
많은 지역 예술인들이 창작보다 생계를 먼저 걱정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예술인 DB는 시작일 뿐이다. 등록된 예술인을 실제 사업과 연결하고 지역 축제와 전시, 문화교육, 학교예술교육, 마을프로그램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예술인도 지역 안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고 군민들도 다양한 문화예술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
이미 여러 지역이 예술인 DB와 문화예술인 네트워크 정비에 나섰다. 화순과 순천, 사천의 문화재단과 행정에서도 예술인 DB 구축과 함께 문화예술인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협업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예술활동증명, 예술활동준비금지원, 예술인생활안정자금, 산재,고용보험, 국민연금보험료지원 등 여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옥천이 다른 지역과 똑같을 수는 없다. 지역마다 규모도 다르고 여건도 다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술인을 단순한 행사 참여 인력이 아니라 지역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로 바라보는 시선일 것이다. 옥천에도 문화예술진흥기금 등 문화예술 지원 기반이 조금씩 마련되어 자리잡고 있다. 이제는 예술인 DB가 이러한 지원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등록된 예술인들이 서로를 알고 함께 전시를 열고 학교와 마을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옥천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남기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면 한다. 서예와 회화, 사진, 공예, 음악, 문학, 공연 등이 서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질 때 지역 문화의 깊이도 더욱 커질 것이다. 먹빛은 하나처럼 보이지만 붓이 머금은 동안의 깊이와 여운도 느끼며 비워둔 여백마저 작품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옥천 문화도 그렇다. 한 장르, 한 사람, 한 행사로 설명되지 않는다. 여러 예술인의 삶과 시간이 섞일 때 비로소 깊어진다.
그래서 기록은 중요하다. 기록되어야 존재를 알 수 있고 알려져야 연결될 수 있으며 연결되어야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진다. 나는 이 시작을 반갑게 지켜보려 한다. 다만 기록이 기록으로만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예술인의 이름이 행정 서류 속에만 남지 않고 정책과 기회, 교류와 지원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등록 이후에도 예술인이 계속 창작하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이번 예술인 DB 구축이 남겨야 할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 역시 떠오르는 생각들을 천천히 갈무리해두려 한다. 먹을 갈아두듯 마음속 소리들을 모아두려 한다. 언젠가 함께 말하고 함께 쓸 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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