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과 점 사이에 문화가 흐른다
상태바
점과 점 사이에 문화가 흐른다
  • 김승애 한국미술협회회원, 충북미술협회 학술평론위원장, 대구/충북서예대전 초대작가
  • 승인 2026.07.23 1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와 예술이 우리의 일상이 되려면


먼저 옥천 지도를 펼쳐 놓고 문화공간을 하나씩 짚어본다. 문화예술회관과 관성회관, 전통문화체험관, 정지용문학관과 생가, 향수시네마, 가양복합문화센터, 도서관과 복지관, 마을회관과 주민센터, 청소년과 청년들의 공간까지. 우리 고장에 이런 자리가 이렇게 많았나 싶게, 지도 위에는 제법 많은 점이 찍힌다.

서예를 해 보면 안다. 흰 종이 위에 붓을 대는 일은 점의 시작일 뿐이다. 붓을 종이에 살포시 대고 나아갈 방향을 잡은 뒤에는 미묘한 멈춤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멈춤이 곧 시작을 알리고, 그 방향을 정확히 잡는 멈춤이 있어야 비로소 원하는 획을 그어낼 수 있다는 것을 붓을 잡아본 사람이라면 안다.

문화공간도 그렇다. 시설이 많다고 곧 문화의 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두 가지다. 이미 있는 공간은 더 활짝 열자는 것, 그리고 앞으로 비게 될 공간은 흩어진 점들을 잇는 마당으로 가꾸자는 것이다.

지난 글들에서 예술인 DB를 옥천 문화의 지도라 했고, 문화예술진흥기금을 그 길을 걷게 하는 물길이라 했다. 교육은 예술을 삶으로 건네는 일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지도와 물길과 배움이 어디에서 만날 것인가. 예술인이 머물고 군민과 만나는 살아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할 차례다.

먼저, 여는 일이다. 공연과 전시를 찾는 발걸음은 퇴근 후 저녁과 주말에 가장 많다. 낮에는 일터와 학교에 매여 있다가 하루 일을 마치고서야 문화 앞에 설 여유가 생기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로는 그 공간이 군민의 시간과 어긋난 채 아쉬움만 남기는 빈자리가 되기도 한다. 원칙도 소중하다. 다만 운영의 기준만큼은 관리하는 쪽의 시간만이 아니라, 공간을 쓰는 예술인과 문화를 즐기려는 군민의 시간에서 함께 출발했으면 한다.

문이 활짝 열린 공간에서는 여러 풍경이 가능하다. 저녁 무렵 청소년들이 작은 발표회를 준비하고, 동호회 회원들이 전시를 앞두고 그림을 걸며 웃는 모습. 강좌를 마친 뒤 작품 성과공유회를 열고, 어르신들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기록하는 모습도 떠올려 본다. 문화공간은 큰 공연이 열리는 날만 살아나는 곳이 아니다. 작은 발걸음이 자주 오갈 때 살아난다.

다음은, 잇는 일이다. 군청이 새 청사로 옮겨 가면 지금의 청사는 비게 된다. 현재 비어 있는 옛 경찰서 부지도 있다. 행정의 손을 떠난 자리는 언뜻 빈 건물처럼 보이지만, 다르게 보면 옥천의 다음 문화 지도를 그릴 여백이지 싶다. 나는 그 자리가 흩어진 문화공간을 잇는 중심 마당이 되는 모습을 그려 본다.

옥천군 소장 작품을 늘 만나는 상설 전시실, 지역 공연과 전시 소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안내 공간, 정지용과 향수의 이미지를 담은 문화상품점, 레지던스 작가들의 작업실, 청년 예술인의 작은 실험 무대, 군민이 쉬어 가는 열린 마당이 그곳에 함께 있는 모습이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그림이다.

그 중심 마당은 다른 공간을 대신하는 곳이 아니어야 한다. 문학관은 문학관대로, 체험관은 체험관대로, 공연장은 공연장대로 저마다의 자리를 살려야 한다. 다만 어디에서 어떤 전시가 열리고, 어떤 공연이 준비되며, 어떤 예술인이 활동하고 있는지를 한곳에서 이어 주는 역할은 필요하다.

작은 전시관과 큰 공연장, 마을의 생활문화 공간이 서로 이어질 때 군민은 옥천의 문화 소식을 더 쉽게 만나고, 예술인은 자신의 작품과 활동을 더 넓게 알릴 수 있다. 관광객도 그곳에서 옥천의 문화와 브랜드를 더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결국 공간을 채우는 것은 사람이다. 예술인과 동호회, 주민과 행정이 함께 움직일 때 공간은 행사장이 아니라 관계가 쌓이는 자리가 된다. 다시 지도를 본다. 점들은 떨어져 있는 듯해도 사람의 발걸음이 오가면 길이 된다.

이미 있는 공간은 활짝 열고, 비게 될 공간은 잇는 마당으로 가꾼다면 지도 위의 점들은 하나의 획으로 그어지리라 믿는다. 그 획이 옥천 문화의 길이 되고, 그 길 위에 더 많은 발걸음과 이야기가 쌓이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