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북면 서화천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2020년 국가 보물로 지정된 옛 서당, 이지당(二止堂)이 있다. 처마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이지당’ 편액이, 대청에는 의병장 조헌 선생이 쓴 ‘각신서당(覺新書堂)’ 현판이 걸려 있다. 각신(覺新), 곧 날마다 새롭게 깨달으라는 뜻이 담긴 배움의 집 이름이다.
이지당은 조헌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그를 기리는 군수와 마을 선비들이 세웠고, 낡아지자 1901년 마을 사람들이 고쳐 세운 자연과 학문, 선비정신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나라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대를 이어 지켜 온 역사인 것이다. 하지만 건물은 스스로 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이런 사연을 모르고 서면 그저 오래된 기와집일 뿐이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만으로는 살아나지 않는다. 잠든 이야기를 깨워 오늘의 사람들 앞에 되살려 놓는 손길이 필요하다. 문화유산은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오래된 생각이 오늘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서예에는 탁본이 있다. 오래된 비석의 글씨는 돌에 새겨져 있어도 그냥 보면 잘 읽히지 않는다. 젖은 종이를 대고 먹방망이로 두드리면 그제야 글자가 하얗게 떠오른다. 새겨져 있다고 저절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두드려 깨우는 손이 있어야 떠오르는 것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돌에 새겨진 글씨를 깨우는 것이 먹방망이라면, 잠든 역사를 깨워 사람들 앞에 떠오르게 하는 것은 예술의 역할이다.
지난 글에서 나는 옥천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기록하자고 했다. 옥천의 문화에서 이야기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기억 속에서 오늘로 이어지는 삶이다. 그 이야기를 다시 살려 내고, 작품으로 빚어내는 것은 예술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이야기는 화가의 붓끝에서 그림이 되고, 사진가의 렌즈를 통해 풍경이 되며, 음악가의 손끝에서 선율이 된다. 배우의 몸짓과 도예가의 물레에서 새로 태어나기도 한다. 과거의 이야기가 뼈대가 되고, 오늘 사람들의 어루만짐이 살이 되며, 예술이 거기에 숨을 불어넣을 때 옥천만의 특색 있는 문화가 탄생한다.
이지당이라는 이름의 ‘이지(二止)’는 『시경』의 “고산앙지 경행행지(高山仰止 景行行止)”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높은 산은 우러러보고, 큰 덕과 올바른 행실은 본받는다는 뜻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를 우러러보고 있으며, 어떤 길을 따라가고 있는가.
조헌 선생이 평생 마음에 새긴 옛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에 머물고, 신하가 되어서는 공경에 머문다.” 이때의 ‘머문다’는 가던 길을 멈춘다는 말이 아니다. 자식에게는 효도가, 신하에게는 공경이 지켜야 할 자리이듯, 사람에게는 저마다 지켜야 할 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예술가가 지켜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나는 자기가 살아가는 고장의 이야기 곁이라고 생각한다. 옥천의 이야기 곁에 머물며 붓을 들고, 렌즈를 맞추고, 물레를 돌리면 그 이야기는 작품이 된다. 그리고 그 작품은 바쁘게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림 앞에서, 노래 앞에서, 무대 앞에서 사람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제 고장의 이야기를 만난다.
예술가는 이야기 곁에 머물고, 사람들은 작품 앞에 머문다. 이렇게 두 번의 머무름이 일어나니,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이지(二止)’가 아닐까. 그렇게 저마다의 자리에서 머문 붓들이 모여야 옥천 문화의 큰 줄기가 된다. 이제는 그 붓들이 한자리에 모일 차례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 가려 한다.
이지당에서 생각한 옥천 문화와 예술가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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