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편의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줄곧 무언가를 권하는 사람이었다. 예술인의 이름을 지도처럼 모으자 했고, 기금이 물길처럼 흘러야 한다 했고, 공간의 문을 활짝 열자 했고, 마을의 기억을 작품으로 빚자 했다. 지난 글에서는 흩어진 붓을 모아 한 폭의 화폭을 펴자고까지 했다. 그런데 원고를 넘기고 나면 늘 마음 한구석이 걸렸다. 말이야 누군들 못 하겠는가. 그 화폭은 정작 누가 펼 것인가.
붓을 잡은 지 삼십 년이 넘었다. 그동안 배운 것 하나는, 획이 종이 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붓끝이 종이에 닿기 전에 먹을 갈아야 한다. 손목의 힘을 가늠해야 하고, 첫 획을 어디에 놓을지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그어 보아야 한다. 그 시간 없이 놓인 획은 아무리 힘차도 글자가 되지 못한다. 지난 일곱 편의 글은 내게 그런 시간이었다. 종이를 펴 놓고 먹을 갈던 시간.
이제야 그 이야기를 꺼낸다. 옥천의 예술인들이 '아트원옥천'이라는 이름으로 모이려 한다. 아직은 준비 중이다. 회칙을 다듬고 첫 사업을 의논하는 단계이니, 무엇 하나 다 되었다 말할 것이 없다. 다만 이름에 담고 싶은 뜻만은 분명하다. 예술이 하나로 모이자는 것, 그리고 그 하나가 옥천이어야 한다는 것.
무엇을 하려는가. 먼저 서로의 작업을 보러 다니는 일이다. 서예가가 사진전에 가고, 사진가가 낭독회에 앉고, 음악가가 도예가의 가마 앞에 서 보는 것. 거창한 사업계획서가 아니라 그런 걸음부터 시작하려 한다. 다음은 함께 기획하는 일이다. 혼자 받으면 작은 지원금도 여럿이 모으면 하나의 전시가 되고 공연이 된다.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건네는 일이다. 무엇이 아쉬운지는 책상보다 현장이 먼저 안다. 요구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기획하고 함께 책임지는 자리, 예술과 예술을 잇고 현장과 행정을 잇는 그릇이 되고 싶다.
그리고 하나 더, 주민에게 가까이 가는 일이다. 문화가 어디 예술인들만의 것이겠는가. 대청호에 물이 차기 전 마을을 기억하는 어르신, 장터를 오래 지킨 상인, 골목에서 자란 아이들. 그이들의 이야기가 없으면 우리 붓은 이 땅에 뿌리내리지 못한다. 예술인이 주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주민이 예술 앞에 걸음을 멈추는 자리. 그런 자리가 쌓여야 문화가 한 고장의 일상이 된다.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모임을 만드는 일보다 이어 가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안다. 살림은 넉넉지 않고, 저마다의 작업만으로도 하루가 짧다. 지금의 이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 나도 장담하지 못한다. 다만 첫 획을 긋지 않으면 두 번째 획도 없다는 것만은 안다. 서예에서도 늘 가장 어려운 것은 첫 획이다.
여덟 번의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왜 이토록 옥천을 말하려 했을까.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이곳에서 붓을 잡았다. 이곳의 물빛과 골목과 사람들이 어느새 내 획 속으로 걸어 들어와 있었다. 좋은 글씨를 쓰고 싶다는 마음과 이 고장이 아름다웠으면 하는 마음은, 내 안에서 한 번도 따로 있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옥천을 말하는 일은 결국 내 붓을 말하는 일이었다.
이제 붓을 내려놓고 자리로 나가려 한다. 아트원옥천의 첫 획은 아직 그어지지 않았다. 그 획은 나 혼자 그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고장에서 붓을 들고 렌즈를 들고 악기를 들고 흙을 만지는 이들,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 걸어 주실 이웃들이 있어야 한다. 여덟 번의 글을 읽어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이제는 글이 아니라 자리에서 뵙기를 바란다. 먹은 이미 갈아 두었다. 저마다의 붓으로, 옥천이라는 두 글자를 함께 써 나갈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