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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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양순 옥천문인협회원
  • 승인 2018.07.1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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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순 옥천문인협회원

나는 오늘도 대전역에 간다. 대전역 대합실은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하는 곳이다. 매표소 직원들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빼곤 매일매일 새로운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곳.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은 채 떠나기도 하고 다시 돌아와 광장을 가로질러 총총히 사라지기도 한다. 다양한 표정의 사람들을 보며 타인의 눈으로 보는 내 모습은 어떨까 하는 걱정에 거울 앞으로 달려가게 된다. 신축 확장한 대전역사는 우뚝한 철도공사 빌딩과 곁을 같이 하고 있다.

경부선이 지나가는 곳인 이곳은 하루에도 수십 편씩 서울로 가고, 또 그 수만큼 대구나 부산, 포항 등 남쪽을 향해 질주한다. 엉켜있는 듯 보이는 여러 갈래의 선로, 결코 합쳐질 수 없는 그 질서의 견고함은 정당하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행선은 어느 때쯤에서건 반드시 교차점을 찾아야 한다. 젊었을 적엔 비둘기, 통일, 무궁화호 등 정겨운 이름의 기차를 일 년에 네댓 차례씩 이용하곤 했다. 교통편이 다양하지 않을 때여서 출발역에서 타지 않으면 자리 얻기가 힘들었다. 아이와 함께 서서 갈 생각에 난감해 하면 두말없이 옆을 내주던 사람들, 행선지를 물으며 삶은 계란이나 귤 등을 나누어 먹으며 떠들썩하던  완행열차 속 풍경, 투박한 정이 넘치던 그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한다.

얼마 전에 ktx에 밀려있던 새마을호 열차가 소임을 다하고 퇴역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사라지는 것에 연민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보다. 고별 운행을 하는 날 객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이 뉴스 말미에 나왔다. 오십여 년을 한결 같이 국민의 애환과 함께 달렸던 특급열차, 빠르고 쾌적한 건 알지만 운임이 비싸서 탈 엄두도 못 냈었다. 짝사랑하듯 먼눈으로 바라만 보던 새마을호여서 배웅하며 드는 소회가 남다르다.

새마을호 그대! 무거운 몸으로 전국 산천을 누비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소.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오. 그래도 그대만큼 행복한 삶을 살기도 쉽지 않은 일이오. 붉게 솟는 아침 해를 보고 가슴 뛴 날이 얼마나 많았소. 돌아오는 길을 환하게 비춰주건 달님에게 고마웠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겠소. 하나, 눈 오는 새벽 먼 길 떠나려 할 때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거요. 느닷없이 달려드는 고라니 녀석들 때문에 가슴이 철렁했던 날도 부지기수였을 것이고 이젠 그 무거운 것들 다 내려놓고 편히 쉬시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라는 명언을 생각해 보오.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내어준다는 뿌듯함을 가지시오. 새마을호! 이름 하나에도 꿈을 걸 수 있었던 호시절. 우리 함께한 눈부신 날들은 영원히 기억될 거요. 부디 눈물을 거두시고 영면하소서…  대합실, 시골버스정류장에나 어울릴법한 이름, 첨단 공법으로 신축한 위풍당당한 건물을 그렇게 부르기는 다소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달리 칭할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수백수천억 원의 자산 가치보다 대한민국 철도산업의 심장부라는 상징성이 더 큰 철도공사  빌딩, 나는 그 대전역 대합실을 내 집처럼 이용한다. 코레일 직원도 아니고, 그곳에 입점한 가게 주인도 아니다. 물론 무단 점거한 노숙자는 더더욱 아니다. 인연이라곤 역사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 대전 시민이라는 것뿐  일 년에 몇 차례 ktx를 이용하는 고객이라는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널찍한 의자에 앉아 사람 구경도 하고 tv도 보고 음악도 듣는다.

그 유명한 대전역 가락국수로 점심을 해결하기도 한다. 내 전용 파우더 룸처럼 이용하는 화장실은 백화점 화장실보다 깨끗하고 아늑하다. 그곳에서 매무새도 고치고 마음도 매만진다. 나이가 들면서 소비를 줄였지만 줄이거나 아낄 수 없는 것도 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 특히 타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은 치워졌지만 역사 뒤쪽 호국광장에 해직자 복직을 촉구하는 천막 농성장이 있었다.

추운 겨울날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코레일 노조원들을 본 적이 있다. 한 집안의 가장인 그분들의 실직은 남의 일이 아니다 싶었다. 곳곳에 만연한 불합리함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어찌 그들 분일까만 멋진 유니폼의 직원들이 다니는 통로이기도 한 곳이어서 그들이 느낄 박탈감은 더욱 컷을 것이다.
시대가 달라졌다고들 하고, 그분들도 소원하던 일터로 돌아갔겠거니 하는 안도감으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지역마다 자랑으로 내놓는 것들이 있다. 천안의 호두과자만큼 명성이 자자한 성심당이 대전역에 있다. 그 빵집 앞은 늘 붐빈다. 이곳에 오면 꼭 들려야 하는 것처럼, 나 역시 이곳에서 손님 배웅할 일이 있으면 밀 이삭 그림이 그려진 종이봉투를 말없이 건넨다. 흐르는 시간 속에 누군가의 추억이 될 우리, 아쉬운 순간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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