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서각작가의 소망 “농촌 고향에 미술관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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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서각작가의 소망 “농촌 고향에 미술관 건립”
  • 도복희기자
  • 승인 2018.08.23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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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예술가 현산 강민의 고향별곡
9차례 개인전 연 서각의 대가(大家)

현산(玄山) 강민(본명 강노형·63) 작가의 고향은 옥천군 이원면이다. 그는 고향을 떠나 경남 마산에서 30여 년 예술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수많은 전시와 작품을 창작해 오는 동안 한시도 고향에 대해 잊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다 1970년 서각에 입문, 서각미술가로 치열하게 살아오던 그가 돌연 고향으로 돌아왔다. 동이면 세산 4길 11-38번지 그의 작품들이 빼곡하게 진열된 전시관을 찾았다. 20년도 넘은 창고를 직접 개조해 만들었다는 곳은 아직 손 볼 대가 많았지만 그대로 하나의 예술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수도, 전기, 정화조에 인테리어까지 예술가의 손에서 재탄생된 오랜 된 건물은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 셈. 강 작가가 고향인 옥천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구체적인 이유와 이곳에서 펼치고 싶어 하는 그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나의 고향은 이원면
강민 작가는 이원묘목단지에 미술관이 조성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미술관이 건립되면 그 주변에 심을 수천 그루의 고목을 사들여 천여 평 임대한 땅에 심어 놓았다. 그는 평생 창작한 작품을 옥천군에 무상으로 기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주변에 심을 정원수들도 기증할 뜻이 있었다. 그는 미술관 주변에 심을 고목을 마을을 돌아다니며 매입했다. 매화꽃이 피어나는 미술관 건립이 그의 오래된 꿈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꽃을 보기 위해서 그곳을 찾게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꽃을 보러온 사람들이 하나하나 작품을 관람할 장소를 마련하는 것. 이것이 강 작가가 고향인 옥천으로 돌아온 이유였다. 그는 평생 자신이 창작해온 작품을 고향에 기증할 의사를 밝혔다. 고향에 작품을 기증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에 30년 간 활동해 오던 모든 걸 접고 옥천으로 오게 된 것. 미술관 건립에 관한 추진 이야기가 있어 결행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오래된 정원수와 작품이 어우러진 미술관 건립은 옥천묘목단지에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다. 매화꽃 가득한 미술관, 이곳이 하나의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확신도 가지고 있었다.

△ 동이면 석화리 벽화
미술관 건립 장소로 이야기가 오고가던 이원 묘목단지에 야구장이 들어섰다. 강 작가는 좌절했다. 그리고 우연찮게 동이면 석화리에 벽화를 그려주게 된 인연으로 지금 거주하게 된 곳으로 이주하게 됐다. 그는 이 모두가 우연찮게 진행된 일이라고 했다. 동이면 석화리가 행복마을로 선정, 이곳에 마을 벽화를 그렸다. 행복마을 지원금으로 ‘오다가다 마을 쉼터’도 만들어가고 있다. 당장 소득 창출이 되는 일이 아닐지라도 더 나은 마을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그린 마을 벽화는 고향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시냇물이 흐르고 복숭아며 포도 과실이 풍성했다.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고 푸른 하늘과 높은 바람이 일렁거렸다. 그는 고향에 와서 고향을 그리면서 행복을 꿈꾼다고 말했다.

△ 치열한 창작열
강민 작가가 ‘제9회 서각미술 개인전’을 대전근현대사전시관(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하면서 “이것이 내 삶이요 인생이다. 먹지 못해도 배가 부르고, 힘들고 고달파도 즐거웠다. 나는 훗날 내 작품을 모두 국가에 기증할 것이다. 예술은 변천해야 예술. 어제와 오늘의 작품이 변천하지 않는다면 내 무능함과 부족함으로 앞서지 못하는 작가다. 내 손에는 붓과 칼이 머리는 작품의 영감이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남보다 잠을 자지 않고 최선을 다 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을 통해 작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작품을 창작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상업미술에서 서각 작가로
강 작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대전, 신도, 중앙극장을 거쳐 이후 부산 남포동 국제극장 등에서 극장 간판 그림을 그린다. 군대에 다녀온 후 경남 마산에서 전문적 상업미술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다. 5년 전 대전 용두동으로 거처를 옮기고 지난 2017년 고향인 이원 근교로 이주한다. 상업미술 작가로 두각을 나타내던 그는 1970년 서각으로 방향을 돌려 또 다른 형태의 작품 활동을 해나가게 된다.

강 작가가 선택한 서각은 고려시대의 팔만대장경과 같은 문자 인쇄용 새김질에서 처음 발달된 것이다. 작가는 기존의 글씨를 새기는 서각예술을 더 발달시켜 그림을 새기는 그림각 이라는 예술장르를 창시한다. 서각과 그림각의 현대화 기법을 응용, 이것을 서각미술이라 칭한다. 서각미술은 오늘날 한 예술장르로 자리 잡게 된다.

서각미술은 종합예술이다. 글, 그림, 공예, 조각, 서양화, 동양화, 부조, 모든 예술장르를 잘 조화시켜 작품을 창출해야 하는 이유다. 강 작가가 연구하고 창시한 서각미술의 뿌리와 오늘날까지 발전한 변천사는 대전에서 전시를 통해 발표된 바 있다.

△ 활동경력
1956년 옥천군 이원면 출생, 1970년 서각입문(부산에서 서각연구실 운영), 1980년 군 제대 후 경남 마산으로 이주 서각연구실 운영, 1999년 경남서각회 발족, 초대회장(도 단위 최초 서각전 개최), 2006년 인터넷 서각미술대학 개설, 대학장(학생 2800명), 창원 마산 현산 서각미술 전수관 운영, 부산예술대학 통합예술치료과 서각미술교수, 중국 훈춘 서화함수대학 명예교수, 대한민국 서각미술협회 발족 초대회장, 대한민국 서각미술대전 발족 초대회장(대전에서 6회 개최), 그림 각 예술장르 창시 후 서각미술로 개명, 2005년 현산 강민 서각미술교본 출간, 2015년 현산 강민 서각미술교본 출간, 2015년 경남 창원시 현산 서각미술전수관 운영(주1회 출강), 대전 용두동 현산 서각미술전수관을 운영해 왔다.

△ 전시
1998년 제1회 개인전(마산시 동서화랑), 2000년 제2회 개인전(서울 방배동 한국갤러리), 2001년 제3회 개인전(창원 대동백화점 갤러리), 2003년 제3회 개인전(경주교육문화회관), 2005년 제4회 개인전 및 교본출간(마산 대우 갤러리), 2011년 제5회 개인전(여수 동백섬 동백전시관), 2012년 제6회 개인전(광주 김대중 문화센터), 2013년 제7회 개인전(창원시 길 갤러리), 2014년 제8회 개인전(충북 옥천군 이원묘목센터), 2015년 제9회 개인전(대전 근현대사 박물관) 등을 개최 했다.

△ 작품이 있어야할 자리
강 작가는 “누가 억만금을 줄테니 지금부터 다시 작품을 다 만들어라 하면 다시는 못 만들 것 같다. 언제 내가 이렇게 많은 작품을 해냈는지 나도 모르겠다”며 “작품이 한 점 한 점 늘어갈 때마다 언제 어디서 빛을 볼 것인지 빛을 볼 자리를 찾아주어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강민 작가의 작품은 전통적인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 십장생, 일월오악도, 연꽃 등을 소재로 사용했다. 또한 기독교, 불교, 신선의 세계까지 그 가르침도 그대로 서각으로 표현해 종교에 상관없이 대중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나무는 주로 은행나무, 소나무, 그리고 수입목인 로즈목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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