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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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2)
  • 손수자 수필가
  • 승인 2024.11.0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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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집은 대체로 옛집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파란 양철지붕이 빨간 기와지붕으로 바뀌었고, 마당 끝에 서 있던 커다란 감나무가 베어져 없어졌을 뿐이다. 감나무가 있던 자리가 허전하다. 마당을 덮은 하얀 감꽃을 밟기조차 아까워서 까치발로 다녔었지.

감꽃 목걸이를 목에 걸고 좋아라고 깡충깡충 뛰던 동생들이 눈에 선하다. 지금 그들의 목에 걸려 있는 금목걸이에 비할 수 있었으랴. ‘툭’하고 홍시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쏜살같이 달려가 감잎 위에 떨어진 홍시를 주워 핥아먹었다. 그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옛집 안팎과 텃밭에 아버지 모습이 아른거린다. 닭 모이통을 손에 들고 가는 아버지 뒤를 하얀 닭 수십 마리가 구름처럼 따라간다. 농업 학교를 졸업하신 아버지는 면사무소에 근무하시면서도 밤늦도록 등잔불 아래에서 새 영농법에 관한 책을 읽으시며 연구하셨다.

밭에 온상을 여러 개 만들어 토마토, 오이, 가지, 호박 등 채소 모종을 키우고 뽕나무 묘목도 길렀다. 그 기술을 4H 클럽 회원들에게 전수하셨다.

나중엔 온 밭을 포도원으로 만들었는데 포도 결실을 한창 거둘 무렵에 돌아가셔서 안타까운 아버지! 그런데 술에 취하시는 날이 많은 아버지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내가 아닌가. 불효했던 죄스러움과 그리움이 가슴에 북받쳐 오른다.

옆에 계신 어머니의 눈에도 이미 눈물이 고여 있다. 매년 강릉 아버지 산소에 오시면서도 이 고향 집에는 발길조차 마다하셨던 어머니시다. 아마 저 눈물을 보이기 싫으셨던 때문이었을까.

고향 집을 지키지 못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훌쩍 떠나버려 아버지 뵐 면목이 없으셨으리라.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어언 38년,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옛집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계신다.

동생은 주인이 외출하고 없는 집 방안을 기웃거리며 깔깔거린다. 이렇게 작은 방에서 어떻게 우리 팔 남매가 자랐는지 신기하단다. 각자 나름대로 옛일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우리가 나고 자란 옛집이 지금껏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감사하단다.

마당에 동생들을 불러 모아 나란히 세웠다. 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유일한 남동생 둘째와 야무지고 똑똑한 일곱째, 그리고 백의의 천사였던 막내 여덟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다. 디지털카메라 셔터를 누르려던 내 입가에 미소가 스민다.

키가 고만고만, 몸매도 고만고만, 얼굴도 비슷비슷하여 붕어빵 같다. 각자의 틀 속에서 뜨거운 고통을 감내하며 구수하게 익은 붕어빵의 맛처럼 동생의 웃는 표정에서도 감칠맛이 우러난다. 그 맛깔스러운 웃음이 포착되자 얼른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곧이어 동생들의 손에 이끌려 카메라 앞에 앉으신 어머니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담이 대부분이었다. 아련하게 다가오는 아버지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강릉이 점점 멀어지자 어둠이 밀려드는 자동차 안이 조용하다. 동생들이 서로 기대어 잠자는 숨소리가 평화롭다. 내 옆에 앉아 계신 어머니도 곤히 주무신다. 내 무쏘 차의 투박한 엔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나는 동생들의 단잠을 깨울세라 조심스레 가속 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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