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엄마의 손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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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엄마의 손길로
  • 장운철 기자
  • 승인 2024.11.07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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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유경아 씨 인터뷰

 

“우울증, 알콜중독 등 정신 장애로 힘드신가요? 엄마의 손길로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집으로 직접 방문하여 정신건강을 위한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요. 환우와 함께 대화하고 산책도 하고, 병원에 동행하고 또 약물 관리 등도 챙겨드립니다. 엄마처럼, 때론 친구처럼 평범한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옆에서 힘이 되겠습니다”

유경아 씨(59)는 사회복지사다. 8년 동안 우울증 등 정신질환자 약 100명의 환우들을 살펴왔다. 그녀는 10년 전 나이 49세 늦깎이 학생으로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했다.

주변에서 이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권면이 많았다. 정말 이 공부가 재미있었다. 복수전공으로 사회심리까지 공부했다.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4년 공부 마친 후, 현재는 옥천에 있는 삼영 사회서비스제공기관(대표 김수종)에서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 정신장애로 고통 받는 두 사람을 만났어요. 저희와 너무도 다른 생활을 하는 분들이었지요. 그런데 이 분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에 사실 마음이 벅차올랐어요.”

흔히, 정신질환자를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주저주저하거나 한 발을 뒤로 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유경아 씨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했다. 그분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동안 자신 안에 감춰져 있던 어떤 사명감 같은 무엇이 불쑥 솟아올랐다. 

“기억나는 사례요? 너무도 많이 있지요. A라는 20대 후반의 여자 분이 있었어요. 처음 만났을 때 머리도 며칠을 감지 않았는지, 말 그대로 떡처럼 되어 있었죠. 냄새도 심했구요. 환기가 안 된 방은 그냥 쓰레기장 같았어요. 생리한 후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온몸이 정말 엉망이었어요. 아직 젊은 아이인데, 그녀의 인생이 이대로 그냥 무너져 버린 것 같아 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녀를 가까이 하지 않았어요.”

유 씨는 A를 딸처럼 여기기로 했다. 실제 비슷한 나이의 딸이 있다. 생일을 물어보고, 좋아하는 과일 물어보고 또 직접 사 와서 같이 먹고, 티셔츠를 좋아한다고 해서 선물로 사주고 등등. 한 걸음씩 A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사실은 A도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머리를 감기로 했어요. 너무도 기뻤지요. 저와 목욕탕도 같이 가기도 했어요. 옷도 새로 입혔어요. A도 좋아했어요. 표정도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지요. 방 청소도 하고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깨끗해졌어요. A는 저와 대화하는 것을 즐거워했어요. 함께 책도 읽곤 했지요. 이제는 버스를 혼자 타고 병원에 갔다 올 수도 있게 되었어요. 스스로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가르쳤어요.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지요. 비법이요? 사랑한다는 진실된 마음이 A에게 전달된 것 같아요. 그리고 꾸준한 반복 학습이 있었지요.”

유 씨는 때때로 눈물을 흘린다. 사람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유 씨의 도움을 받은 A는 4년 동안 정말 많이 변했다. 다만, 법적으로 서비스 제공 최대 기간이 4년이라는 게 속상할 따름이다. 

정신질환 원인 중 대표적인 것은 어려서 가정 폭력에 의한 것이다. 특히 아버지의 폭행이다. 여자 아이의 경우에는 커가면서 친인척이나 동네 어른들로부터 성폭행 등 위험에 처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럴 경우 환자는 물론 마을 전체가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B는 26살 여자 아이였어요. 처음 그 아이를 찾아갔을 때는 정말....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개보다도 못한 생활 환경에 처해 있었어요. 가슴이 미어질 정도였지요. 속옷도 입지 않고 있었고... 결국 성폭행 사건까지 드러나게 되었지요. 여기부터는 저의 역할의 범위를 벗어나 경찰이 개입될 수밖에 없어요.”

집안에 정신질환자가 있을 경우, 사람들은 대체로 ‘쉬쉬~’하며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경우이 많다. 이렇게 환자를 집안에 그대로 방치하면, 환자의 병세도 점점 심해지고 또 이로 인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속히 사회복지사를 통해 병원과 연결해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약물을 규칙적으로 잘 복용만해도 일상생활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환자는 물론 가족과 마을 사람들 모두가 건강하게 지내는 방법이다. 

‘죽겠다’는 외침이
제 귀엔 ‘살려주세요’로 들렸습니다


“P씨를 생각하면 제일 가슴이 아려옵니다. 그는 간질과 뇌병변 등을 앓고 있었어요. 그는 늘 술에 취해서 살고 있었지요.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겠어요. 그의 인생에는 화가 많았어요. 그래도 저와 3년 함께 지내며 많이 좋아졌지요. 저를 ‘누님, 누님..’ 부르며 잘 따랐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저에게 전화가 왔어요. 마지막으로 누님 목소리 한 번 듣고 죽겠다는 거예요. 저는 깜짝 놀랬지요. 벌떡 일어나 소리를 치며 어디에 있냐고 물었어요. 작은 목소리로 어느 등산로 쪽 자신의 위치를 말해주더군요.”

유 씨는 곧바로 경찰에 연락을 취했다. 다행히 경찰의 수색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정신병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유 씨의 손길에서 떠나야만 했다. 종종 휴가를 나오면 꼭 유 씨를 찾는다.  

“그래도 그때, 마지막 순간에 나에게 전화를 주어서 정말 감사했어요. ‘죽겠다’는 그의 목소리가 제 귀에는 ‘살려주세요’라고 들렸거든요.”

유경아 사회복지사는 현재 16명의 정신질환 환우를 돌보고 있다. 한 달에 60시간, 즉 15명 이상을 맡아서 서비스 제공을 해 주어야 4대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기관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30-50명을 돌보아야 한다. 현재로는 부족한 게 많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옥천에 있어요. 그곳과 연계되어 좀더 많은 환우들에게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한 서비스 제공 기간이 최장 4년인데, 그 기간으로는 사실 부족해요. 기간이 더 늘었으면 좋겠어요.”

유경아 사회복지사는 언제나 밝다. 정신질환자 돌보는 일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8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환우 때문에 짜증나거나 화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환우들을 ‘내 자식이라면, 또 내 가족이라면...’이라는 마음으로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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